어디까지 탐할 것인가?
삶에서 가장 큰 고민이다. 어디까지가 욕심이고, 어디까지가 당당한 대가인가?
고전은 대단히 쉬운 답을 준다.
“먼저 잃을 것을 살펴라!”
얻을 것에 현혹되지 말고, 잃을 것을 살펴서 잃을 것이 감당이 된다면, 그럼 욕심이 아니고 정당한 대가를 바라는 것이니, 일을 진행하라는 것이다.
옛날 한 돈에 눈이 번 부자가 있었다. 돈이라면 사죽을 못쓰는 것으로 천하에 소문이 났다.
하루는 소문을 듣고 수도의 귀족이 찾아와 거금을 내놓으며 부탁을 했다.
“내 죄를 뒤집어 써주면 이 돈을 줄테니 어떤가?” 눈앞에서 수백만량의 황금에 벌써 눈이 돌아간 부자가 물었다.
“어떤 죄요?”
“중죄지.” 귀족이 답했다.
놀란 부자가 물었다. “아니 그럼 죽을 수도 있겠소?”
귀족 짐짓 태연한 듯 웃으며 말했다.
“그렇기는 하지, 하지만 그럴 수도 있다는 건 아니고 아닐 가능성도 있다네. 그리고 돈을 보게 이 돈으로 로비를 하면 목숨은 건지겠지. 그리고도 남을 돈이지 않은가?”
이미 돈에 눈이 먼 부자가 이 말을 듣고 말했다.
“좋소. 내 당신 죄를 사겠소.”
그리고 부자는 황금을 가지고 와 식구들과 함께 흥청망청 쓰기 시작했다. 소식을 들은 친구가 찾아왔다.
“아니, 이보게. 황금이 아무리 좋다고 해도 목숨도 좋은가? 귀족은 바보인가? 이 많은 황금을 주면서 죄를 팔게. 어서 가 없던 일로 하게.”
하지만 부자는 이미 황금의 달콤함에 취한 지 오래였다. 오히려 친구가 자기와 같은 기회를 못잡아 셈을 내는 것이라 생각했다.
“걱정마시게. 내 일은 내가 알아서 한다네.”
그리고 얼마 뒤 포졸들이 와 부자를 역모죄로 포박을 해 갔다. 조사를 통해 황금을 같이 쓴 가족들까지 공범으로 연루됐다.
일가족이 몰살하게 되자, 형장에서 부자가 눈물을 흘렸다.
“내가 다시 태어나면 절대 욕심을 내지 않으리라.”
작금의 한국의 정치상황도 연상시키는 중국 우화다. 세상은 한국이 망한다고 슬퍼하지 않는다. 부자와 부자의 가족만 형장에서 눈물을 흘렸듯, 한국인들만 눈물을 흘리게 된다. 그런 상황으로 몰고 가는 우리 정치인들이 밉기만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