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의 싸움, 쉽지가 않네요.”
지난해 중순 개봉된 영화 ‘터널’ 이후 1년 6개월 만에 돌아온 배우 하정우의 소감은 남다르다. 자신이 주연을 맡은 영화 <신과 함께>(감독 김용화)와 <1987>(감독 장준환)이 불과 1주일의 차이를 두고 개봉돼 맞대결을 펼치기 때문이다. <신과 함께>가 개봉 1주일 만에 500만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는 사이 개봉된 <1987> 역시 호평 속에 순조로운 흐름을 보이고 있다. 연말을 장식하는 또 다른 영화 <강철비>의 주인공을 맡은 배우 정우성과는 같은 소속사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다. 하정우로서는 자신과의 싸움, 집안 싸움을 동시에 펼쳐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기도 하다.
ⓒ Lotte Entertainment
“이거 쉽지가 않아요. 나와의 싸움인데 너무 흥미로워요. 양쪽에서 일을 해야 하니 체력과의 싸움이기도 해요. 제가 출연하지 않은 <강철비>도 재미있다고 해서 걱정이 되면서도 응원하고 있어요. 결국은 모두가 다 함께 잘됐으면 하는 게 제 바람이죠.”
여러 배우들이 출연 분량을 나눠 가진 <1987>과 달리 <신과 함께>에서는 하정우의 비중이 절대적으로 크다. 한국의 유명 웹툰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사망한 이들이 통과해야 하는 지옥의 7가지 재판에 대한 이야기를 다뤘다. 그 속에서 하정우가 맡은 ‘강림 차사’는 인명을 구하다 숨진 소방관을 변호하는 인물이다.
“이 영화를 촬영하면서 ‘용서’라는 단어가 가장 많이 생각났죠. 평생을 살아가며 가족 간에도 용서할 일과 후회하는 일이 많잖아요. 결국 죽은 후에는 돌이킬 수 없는 데도 말이죠. 그다지 어렵지 않은 말 한 마디, 메시지 하나만으로도 관계가 회복될 수 있고 후회없는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 좋았어요.”
하정우는 <신과 함께>를 연출한 김용화 감독과 이미 한차례 호흡을 맞춘 적이 있다. 2009년 개봉돼 7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한 <국가대표>를 합작했던 두 사람은 8년이라는 시간을 거쳐 다시 마주했다. 그 사이 하정우는 충무로를 대표하는 배우로 자리매김했고, 김용화 감독은 한층 더 정교해진 컴퓨터그래픽이라는 무기를 탑재했다. 특히 고릴라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전작 <미스터 고>가 흥행에 실패하며 마음 고생이 심했던 김용화 감독은 하정우라는 든든한 우군을 얻어 재기가 성공했다.
“김용화 감독님이 <미스터 고> 흥행 실패 이후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대학교 선배인데다 친하니까 ‘다음 영화엔 저 써줘요. 이상한 거 아니면 다 할게요’라고 위로했어요. 그런데 정말 시간이 지나서 <신과 함께>를 함께 하자고 제안하더라고요. (웃으며) 다행히 시나리오는 나쁘지 않았어요. <국가대표> 같은 느낌을 받았죠. 분명 관객에게 통할 것 같아서 출연을 결심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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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과 함께>의 또 다른 주인공은 ‘저승’이라는 배경이다. 미지의 공간을 구현해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수준의 컴퓨터 그래픽이 쓰였다. 사후 49일 동안 살인, 나태, 거짓, 불의, 배신, 폭력, 천륜 등 총 7가지를 주제로 재판을 치르는 모습과 각 관문을 담당하는 신들의 모습은 꽤 흥미롭다. 차사 역을 맡은 하정우 역시 하늘을 날고 광선검을 휘두른다. 하지만 가상의 공간을 다루는 만큼 실제 존재하지 않은 무언가를 대상으로 연기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영화 <매트릭스>나 <아이언맨>을 떠올렸어요.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선배님 같은 분들도 정색을 하며 하늘을 날잖아요. 저 대단한 분도 이렇게 집중을 하면서 연기하는데 제가 뭐라고 어색해 하겠어요.(웃음)”
올해 40대에 접어든 하정우. 불혹이라는 나이가 주는 무게감이 만만치 않다. 게다가 <신과 함께>와 <1987>은 그의 40대를 여는 작품들이다. 그래서 선택하는데 더 신중했고, 집중해서 연기했다. “큰 선물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두 작품을 들고 40대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이 더없이 큰 선물인 거죠. 비록 두 영화가 한 주 차이를 두고 개봉되지만 불편하다기 보다는, 그 안에 들어가서 같이 즐기고 싶어요.”
기자 김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