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른 하나는 지난 12일 이뤄진 최고인민법원과 최고인민검찰원의 공작보고서다.
중국에서 공작은 업무라는 뜻이다. 한국식 어감으로 생각하면 안된다. 그저 업무보고서다. 이 업무보고서가 주목되는 것은 그동안 “인민을 보호하겠다”고 해왔던 표현이 “인권을 보호하겠다”고 바뀐 것이다.
인민과 인권의 차이다. 중국에서는 한 때 당성과 인민성이 충돌한 적이 있다. 당성을 간단히 당원으로 요구되는 성격, 심리 등을 말한다. 인민성은 인민으로서 요구되는 심리 성격이다. ‘당성이 앞서냐, 인민성이 앞서느냐’는 게 중국 공산당 초기의 논쟁이었다. 당시 당은 인민을 영도하는 조직이니, 당성이 인민성을 앞서는 게 맞았다.
당원은 순수하게 인민을 위해 인민을 옳은 길로 이끈다는 것이다. 그러나 덩샤오핑 이후 당성은 인민성과 같다. 당이 인민을 대표해 위하기 때문에 인민이 원하는 것으로 인민을 위하겠다는 것이다. 간단히 극좌의 수도사같은 당원이 인민을 고통스럽게 하느니, 인민이 원하는 먹을 것을 중시하는 당이 되겠다는 의미다. 당은 그 뒤 인민을 대표하고, 그 인민에는 과거 농민과 노동자뿐 아니라 자본주의자까지 포함하게 됐다.
그럼 이제 인민과 인권의 차이다. 중국은 대표적인 전체주의 국가다. 인민은 당이 규정한 하나의 성격의 무리이지, 다양한 의견을 가진 인간들의 무리가 아니다. 그래서 중국 공산당에서 인민의 적은 그야말로 가장 무서운 질책이다. 중국 공산당이 보기에 존재해서 인민에게 해가 된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이다. 인권은 인민의 권리이지 인간의 권리가 아니다. 그래서 중국에서 인권이라는 용어의 쓰임을 보기 힘들었다. 그런데 드디어 중국 법원의 업무보고서에 ‘인권’이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여기에는 두 가지 해석이 있다. 중국 공산당이 인민의 적이라도 인간으로서 권리를 공식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아주 긍정적인 분석이다. 또 다른 하나는 중국 역시 자신들의 용어가 서구사회의 용어와 차이가 나 불필요한 오해를 산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 생각이 어떻든 남이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게 중국 공산당이다. 즉 서구 용어를 그저 가져다 쓰면서 서구 사회가 중국 공산당을 향해 압박하고 있는 인권문제를 비껴가려는 조치라는 분석이다. 좀 중국 공산당에 비판적인 시각이다.
자유아시아방송에 따르면 이런 시각에 힘을 실어주는 게 같은 업무보고서의 주제가 ‘반드시 국가정치안전을 유지하도록 하겠다’는 점이다. 이 같은 점은 12일자 자유아시아방송의 보도에서 잘 나타나 있다.
물론 아직 어느 분석이 옳은지 알 수 없다. 이 경우 이 문제를 중국 관료에게 묻는다면 틀림없이 듣는 답변이 있다. “중국은 행동으로 진실을 이야기한다.” 두고 보면 알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