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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새가 햐얀 건 저 강이 더 푸른 탓

“江碧鳥遊白(강벽조유백)

山靑花欲燃(산청화욕연)”

 

“오늘 하얀 새가

더 하얀 건

저 강물이

더 푸르기 때문

 

산이 더 푸르니

이제 그 산 속

꽃도 더 피려나.”

당 시인 두보의 시다. 오언절구다. 두보는 이백과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양대 시인 중 한 명이다. 이백은 감성으로 썼고, 두보는 이성으로 시를 썼다.

이번 시는 그런 두보가 이백과 같은 감성으로 쓴 몇 안되는 시다.

 

시는 무르익는 봄을 느끼는 시인은 감성에서 시작된다.

고향을 그리며 매일 강가에 나가 저 하늘 저편의 고향을 그리던 시인의 눈에 갑자기 들어온 하얀 새가 그의 감성을 건드린다.

문득 그 새가 너무나 하얗게 느껴진 것이다.

 

저 새가 오늘 더 하얗다.

새는 어제 그 새인데,

오늘 그 새가 어찌 더 하얄까?

 

아 그 건

새가 바뀐 게 아니다.

강물이,

새가 날아다닌

저 강물이

더 푸르러진 탓이다.

 

강물이 푸르러

새도 더 하얘진 것이다.

 

저 꽃은 어쩔까?

오늘 저 산이

푸른데

저 푸른 산 속의

빛나는 꽃은

분명 더 빛날 것이다.

 

그래 봄이다.

봄이라 그렇다.

산은 푸르고

물은 파랗고

그래서

새는 더 하얗고

꽃은 더 빛난다.

 

그런데 이 봄이 가면,

겨울인데,

새도

꽃도

산도

저 강물도

그렇게

 

다시 원래 모습으로

되돌아 갈텐데

나는 언제쯤

내 어린 시절

그리운 그들과 만날 수 있을까?

 

“今春看又過(금춘간우과)

何日是歸年(하일시귀년)“

“이 봄 가면

또 언제

고향에 가려나”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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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식체는 언어의 자연스런 변화" VS "사자성어도 말할 수 있다"
최근 중국에서 한 영상이 화제와 논쟁을 불러 일으켰다. 영상은 소위 ‘급식체’를 쓰는 어린이들이 옛 사자성어로 풀어서 말하는 것이었다. 영상은 초등학생 주인공이 나서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包的’라고 말하지 않지만, ‘志在必得’, ‘万无一失’, ‘稳操胜券’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老铁’라고 말하지 않지만, ‘莫逆之交’, ‘情同手足’, ‘肝胆相照’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绝绝子’라고 말하지 않지만, ‘无与伦比’, ‘叹为观止’라고 말할 수 있다…” ‘包的’는 승리의 비전을 갖다는 의미의 중국식 급식체이고 지재필득(志在必得)은 뜻이 있으면 반드시 이뤄진다는 의미의 성어다. 만무일실(万无一失)을 실패한 일이 없다는 뜻이고 온조승권(稳操胜券)은 승리를 확신한다는 의미다. 모두 이길 수 있다는 확신을 뜻하는 말이다. 초등학생이 급식체를 쓰지 말고, 고전의 사자성어를 다시 쓰자고 역설하는 내용인 것이다. 논란은 이 영상이 지나치게 교육적이라는 데 있다. 적지 않은 네티즌들이 초등학생의 태도에 공감을 표시하고 옛 것을 되살리자는 취지에 공감했지만, 역시 적지 않은 네티즌들이 자연스럽지 않은 억지로 만든 영상이라고 폄훼했다. 평파이 등 중국 매체들에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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