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斜阳照墟落,怅然吟式微。”(사양조허락, 창연음식미) “석양 온 촌락 물들일 때 입가엔 노랫가락 맴돌고” 석양은 자연이 만든 ‘인생이란 극의 막’이다. 하루의 막이 내리면, 붉은 빛이 빛나며 저 멀리 마을부터 조금씩 어둠에 잠기게 된다. 시작은 거창하지만 짧은 오언절구의 시다. 왕유의 위천전가(渭川田家)다. 강변 농가 마을의 전경을 읊었다. 소개한 구절은 중간 모두를 생략하고 시의 첫구와 마지막 구만을 적었다. 사실 시 자체가 그렇다고 느낀 때문이다. 왕유의 시는 강가 전원마을에 저녁 풍경을 그렸지만, 사실은 그 속에 생략된 시인의 인생 전반에 대한 소회를 읊었다는 게 필자의 감상이다. 다시 왕유의 시다. 시는 석양 낀 마을의 평온함을 지켜보는 마음이다. 평온함이 너무나도 포근하게 다가온다. 석양은 사실 ‘순화’(順化)의 상징이다. 어둠의 두려움에 대한 순화다. 어둠을 담대하게 맞는 마음이다. 그 어둠 아래 마지막 빛이 바로 석양이다. 하루의 삶이 가장 빛나는 순간이다. 가끔 산 위에서 바다가 언덕에서 석양을 보면 그 아래 검은 장막의 끝자락 붉은 빛 아래 움직이는 수많은 군상들이 눈에 들어온다. 모두가 하루를 마치고 의식하지 못한 채 너무도 익숙하게 어둠을
“请留盘石上, 垂钓将已矣。” “우리, 이 강변에 낚시나 드리울까?” 세월을 낚는다는 건 동양 선비들의 오랜 ‘노년몽’이다. 나이 들어 여유자적하게 ‘강가에 낚시를 드리우고 세월을 낚는다.’ 세월은 해 세(歲), 달 월(月)의 합자다. 1년, 혹은 사람의 한 생을 의미한다. 당시인 왕유의 시, 청계의 한 구절이다. 산시성 사람인 왕유는 시불(詩佛)이라 불리는 음유시인이다. 서정성에서는 시대를 초월하는 자신만의 경지를 구축했다. 역대 중국 왕조에서, 필자 개인적으로는 동서양을 막론해 그의 경지에 이른 이가 드물다고 생각한다. 청계는 저(沮) 강의 지류다. 시인은 이 녹림 속에 다양한 곡절로 흐르는 청계의 아름다움을 그리며 세속의 번잡함과 그를 관조하는 주변의 여유를 대비해 보여준다. 강은 흐르는 세월이요, 주변의 깊고 푸른 숲은 그 흐름을 담는 우주다. 세월은 동양 시의 고전적 주제다. 세나 월이나 둘 모두가 별이다. 세는 목성, 쥬피터이며, 월은 달, 문이다. 목성은 밤 하늘 가장 밝은 별이다. 밝기는 금성이 더 밝지만, 새벽에만 보인다. 밤을 밝히는 것은 목성과 달이다. 세월은 밤하늘인 셈이다. 그 옛날 밤하늘을 보고 시간의, 세월의 흐름을 알았으니 세와 월
“세상이 정의롭다 누가 그랬나, 힘없으면 피곤한 게 인생인데” “孰云网恢恢,将老身反累。”(수운망회회, 장로신반루) 세상사 참 묘하다. 모두가 ‘사필귀정’이라는 데, 정작 누구도 그 결과를 본 이는 없다. 오히려 반대다 살아서 항상 못된 놈들이 이기는 것만 본다. 그런데 참 묘한 게 지나고 나면 ‘맞다’ 싶은 것도 사필귀정이다. “세상은 바르다.” 맞는 듯 틀리고 틀리는 듯 맞다. 2000년 두보의 한탄이다. 싯구는 두보의 ‘이백을 꿈꾸며’ 2수 중 두 번째 시다. 같이 시로써 세상을 노래하던 지기 이백이 꿈에 자주 보인다는 게 집필 동기다. 저 멀리 귀향살이를 간 이가 꿈에 보이는 데 창백한 얼굴에 낭패한 기색이 역력하다. 놀라 깨어나 보니 가슴이 먹먹하다. 아련히 떠오르는 친구의 얼굴, 가슴 저편에 아련한 아픔이 퍼진다. ‘망회회’는 하늘의 도다. 노자의 말이다. 하늘의 그물은 성글지만, 그 그물을 벗어나는 존재란 없다는 뜻이다. 도는 천지창조의 원리다. 만물을 지배하는 도리다. ‘망회회’는 하늘의 도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의미다. 그런데 2000년 전 두보가 한탄했고, 오늘날 필자도 한탄을 한다. ‘누가 하늘의 도가 살아 있다 했는가?’, ‘세상에
“君今在罗网,何以有羽翼?”(군금재라망, 하이유우익) “그물 속에 갇힌 그대여, 날개 있은 들 어찌할까.” 인생은 알 길이 없다. 행복하다 싶은 데, 고난이 찾아오고 너무 힘들다 싶은 데 희망이 다시 보인다. 두보의 시다. ‘몽이백’(梦李白), ‘이백을 꿈꾸며’라는 제목의 시다. 제목 그대로 이백을 꿈꾸며 썼다. 시는 건원 2년, 759년에 쓰였다. 두보가 진주(秦州)에 머물며 썼다. 본래 이백은 두보의 절친이었다. 둘이 만난 것은 744년. 두보 나이 33세, 이백이 44세였을 때다. 11살의 나이 차이였지만, 중국의 시문학사의 가장 높은 분수령을 이룬 두 시성은 금방 서로의 자질을 알아봤고 문학의 깊이를 교류하는 상우(尙友)가 됐다. 이백은 756년 여산에 있다 반군 진영에 잠시 머물게 된다. 하지만 758년 반군이 패하면서 이백은 귀향을 가게 된다. 하지만 두보가 시를 쓸 당시 이백은 이미 사면돼 풀려났다. 당시 진주에 머물렀던 두보는 그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런 두보가 어느 날 갑자기 꿈에 보인 그리운 벗의 초췌한 모습에 놀라 가슴을 쓸어내리며 걱정 가득한 심정을 단숨에 풀어낸 것이 바로 이 시다. 벗을 향한 애틋한 마음이 그대로 들어난다. 시작부터
“但去莫复问,白云无尽时。”(단거막복문, 백운무진시) “말없이 그댈 보낼 때 멀리 흰 구름 흐르고” 이별 시다. 당의 가장 인간적인 가장 서정적인, 소리 내 우는 눈물이 아니라, 숨어 삼켜 우는 눈물을 아는 시인 왕유의 시 ‘송별’이다. 761년 숨졌는데, 태어난 해에는 701년과 699년 두 가지 설이 있다. 당대 이백을 ‘시성’(詩聖), 두보를 ‘시선’(詩仙)이라 한다면, 왕유는 시의 부처, ‘시불’(詩佛)이라 불렸다. 송대 가장 걸출한 시인 소동파는 왕유의 시를 높이 평가해 “왕유의 시 속엔 그림이 있다”고 했다. 그만큼 왕유의 시들은 아름다고, 생생한 심미주의가 담겨있다. 그 옛날 이별은 오늘과 달랐다. 한 번 헤어지면 쉽게 다시 보기 힘들었다. 헤어짐은, 그래서 많은 것을 가슴에 묻어야만 했었다. 그래서 옛 사람의 이별에는 항상 작은 예식이 있었다. 술과 노래, 작은 선물 꺾어든 버들잎 옛사람 이별식의 필수 품목들이다. 버들나무 류(柳)는 머물다는 류(留)와 발음이 같았다. 만(挽)은 ‘당기다’, ‘꺾다’는 뜻이다. 류(柳)를 꺾는(挽) 건 말없이 강한 만류(挽留)의 뜻이다. 만류는 뜻을 꺾는다는 의미다. 그대 부디 가지 마오. 그 강을 건너지 마오.
“약할수록 더 힘든 세상 만사 촛불처럼 흔들리네.” (世情惡衰歇, 萬事隨轉燭.) 세상이 참 그렇다. 약한 이만 찾아서 더 괴롭힌다. 인정이란 게 참 그렇다. 약하고 몰락한 이를 외면하게 된다. 가난해 보고 쇠약해 지면 비로소 세상의 본 얼굴이 보인다. 두보의 시 ‘가인’(佳人)다. 첫 구절만으로 시의 제목을 짐작하기 어려울 정도다. 시는 몰락한 가인이 겪는 세상사를 노래하고 있다. 시는 안록사의 난이 발생한 지 5년이 지난 758년 가을에 쓰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해 6월 두보는 벼슬이 화주사공참군으로 강등되자, 벼슬을 버리고 가족과 함께 생활터전을 진주로 옮긴다. ‘가인’은 그 때 쓰였다. 어떤 이는 두보가 그냥 자신의 처지를 빗댄 것이라고 어떤 이는 실제 들은 것을 작품화했다고 주장한다. 누구도 확실한 증거는 없지만 당시 세태만은 사실이라는 게 중론이다. 두보는 이렇게 시로 세상을 고발한 저널리스트다. 시로 기사를 썼다. 시는 산 속에서 우연히 만난 가난하지만 귀품 있는 중년 여성을 만나면서 시작한다. 그 중년 부인을 지칭하는 말이 가인이다. 깊은 산 속 계곡에 가인이 살고 있네. “난 귀족이었어요. 이젠 초목에 살죠. 지난번 난리통에 형제를 잃었어요
두보의 ‘증위팔처사’ “十觞亦不醉, 感子故意长. 明日隔山岳, 世事两茫茫.” (십상이부취, 감자고의장. 명일격산악, 세사량망망) “마셔도 마셔도 취하지 않는 건 그대와 우정이 깊고 깊은 때문. 친구여! 내일 우리 다시 각자 길을 가면 언제 다시 볼까 세파를 그 누가 알리요!” 어린 시절 친구를 20년이 지나 다시 만났다. 그리고 나눈 술 잔, 이 술이 도무지 취하지 않는다. 아니 취하지 않은 게 아니라 취해서 취한 줄 모르는지 모른다. 두보의 감성이다. 두보는 본래 ‘빈잔 술에 취하는’ 시인이다. 그의 감성은 이성 속에 있고, 차분함 속에 깊은 분노도, 격정도 감추고 있다. 제목은 ‘증위팔처사’(赠卫八处士:위팔처사에게 주다)다. 759년 당 숙종 건원 2년에 쓰였다. 두보가 화주 사공참군사로 강등돼 부임할 때다. 758년 겨울 두보는 상소를 잘못 올린 죄로 직을 강등당했다. 두보는 부임전에 낙양의 옛집을 찾는다. 759년 3월 구절도사의 군대가 업성에서 대패를 하면서 두보는 길을 돌아 부임지로 가게 된다. 당시 봉선현의 위팔처사의 집은 이 노정에 있었다. 그렇게 두보는 옛 친구를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는 것이다. 위팔처사는 위씨 집안 여덟째라는 뜻이다. 처사는
“江碧鳥遊白(강벽조유백) 山靑花欲燃(산청화욕연)” “오늘 하얀 새가 더 하얀 건 저 강물이 더 푸르기 때문 산이 더 푸르니 이제 그 산 속 꽃도 더 피려나.” 당 시인 두보의 시다. 오언절구다. 두보는 이백과 함께 중국을 대표하는 양대 시인 중 한 명이다. 이백은 감성으로 썼고, 두보는 이성으로 시를 썼다. 이번 시는 그런 두보가 이백과 같은 감성으로 쓴 몇 안되는 시다. 시는 무르익는 봄을 느끼는 시인은 감성에서 시작된다. 고향을 그리며 매일 강가에 나가 저 하늘 저편의 고향을 그리던 시인의 눈에 갑자기 들어온 하얀 새가 그의 감성을 건드린다. 문득 그 새가 너무나 하얗게 느껴진 것이다. 저 새가 오늘 더 하얗다. 새는 어제 그 새인데, 오늘 그 새가 어찌 더 하얄까? 아 그 건 새가 바뀐 게 아니다. 강물이, 새가 날아다닌 저 강물이 더 푸르러진 탓이다. 강물이 푸르러 새도 더 하얘진 것이다. 저 꽃은 어쩔까? 오늘 저 산이 푸른데 저 푸른 산 속의 빛나는 꽃은 분명 더 빛날 것이다. 그래 봄이다. 봄이라 그렇다. 산은 푸르고 물은 파랗고 그래서 새는 더 하얗고 꽃은 더 빛난다. 그런데 이 봄이 가면, 겨울인데, 새도 꽃도 산도 저 강물도 그렇게 다시 원
“舉杯邀明月,對影成三人” (거배요명월, 대영성삼인) “술 잔 들어 달 부르니, 그림자까지 셋이 됐네” 요정의 나라는 어린이 꿈에만 있는 게 아니다. 순수한 사람라면 누구에게든 있다. 요정을 부르는 마법도 동화 속에만 있는 게 아니다. 현실 속 술 한 잔은 요정의 세계로 가는 마법이 된다. 이백의 시다. 가장 유명한 시다. 한 번도 못 들어본 이는 있어도 한 번만 읽은 이는 없다는 시다. 이백의 ‘월하독작’(月下獨酌)이다. ‘달 빛 아래 혼술’이다. 혼자 마시는 술이다. 본래 동양에선 ‘독작’(獨酌)이라 했다. 혼자 마시는 술은 외로워 마시는 술이다. 처량한 술이다. 혼자 취해 이리 비틀, 저리 비틀 추태를 부리기 일쑤다. 그래서 외로워 마시는 술은 사람을 더 외롭게 한다. 이런 외로움을 시인 이백은 요정의 시공 속으로 가는 마법으로 풀어낸다. 소개한 구절은 바로 꽃밭이 요정의 마법 세계로 변하는 주문이다. 술잔을 들어 달에게 이 주문을 외우면 달의 요정이 화답을 하고, 그림자가 살아 움직인다. 다시 이백의 월하독작이 살아 움직인다. “꽃 속에 따른 한잔 술 홀로면 어떠랴, 저 달, 내 그림자 있는데 술 잔 들어 달 서생과 건배하고 술 잔 내려 그림자와 건배하
“春风不相识, 何事入罗帏?” (춘풍부상식, 하사입라위) 어디선가 불어온 봄바람 애꿎은 치마 끝만 들추네. 시성 이백(701~762)의 춘사다. 이백은 누구라 말할 것 없는 천재 시인이다. 1300여년 전 당나라 시인이지만, 지금 읽어도 시의와 시정은 읽는 이의 마음을 적시고, 요동치게 한다. 그의 시어(詩語)는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한계 속에 있지만, 그의 시율은 시대를 넘어 천고를 관통해 면면히 이어진다. 동서양, 그의 시처럼 때론 호방하고 때론 애처롭고 때론 정욕에 싸인 듯 때론 백합처럼 간결하고, 깨끗한 이 모든 것을 다 갖춘 시를 본 적이 없다. 춘사(春思)는 말 그대로 ‘봄의 생각’이다. 봄에 드는 그리움이다. 하지만 겨우내 가슴 속 깊숙이 농 익어온 마음의 정, 심정(心情)이다. 본래 그리움이 짙어지면 애달프다. 애달프다는 건 마음만 아픈 게 아니다. 몸도 아픈 것이다. 몸과 마음으로 그리고 그려, 그리다 못해 그대 오는 날 그만 버티지 못하고 끊어지는 단장(斷腸)의 고통, 애달픔이다. 춘사는 이 애달픔을 너무 간결하게 너무도 새침하게 너무도 요염하게 그렸다. 그래서 일견 소녀의 방심(芳心)같고 탕부의 음심(淫心)같으며, 때론 열부(烈婦)의 결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