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君今在罗网,何以有羽翼?”(군금재라망, 하이유우익)
“그물 속에 갇힌 그대여,
날개 있은 들 어찌할까.”
인생은 알 길이 없다.
행복하다 싶은 데,
고난이 찾아오고
너무 힘들다 싶은 데
희망이 다시 보인다.
두보의 시다. ‘몽이백’(梦李白), ‘이백을 꿈꾸며’라는 제목의 시다. 제목 그대로 이백을 꿈꾸며 썼다.
시는 건원 2년, 759년에 쓰였다. 두보가 진주(秦州)에 머물며 썼다.
본래 이백은 두보의 절친이었다. 둘이 만난 것은 744년. 두보 나이 33세, 이백이 44세였을 때다. 11살의 나이 차이였지만, 중국의 시문학사의 가장 높은 분수령을 이룬 두 시성은 금방 서로의 자질을 알아봤고 문학의 깊이를 교류하는 상우(尙友)가 됐다.
이백은 756년 여산에 있다 반군 진영에 잠시 머물게 된다.
하지만 758년 반군이 패하면서 이백은 귀향을 가게 된다. 하지만 두보가 시를 쓸 당시 이백은 이미 사면돼 풀려났다.
당시 진주에 머물렀던 두보는 그 소식을 듣지 못했다.
그런 두보가 어느 날 갑자기 꿈에 보인 그리운 벗의 초췌한 모습에 놀라 가슴을 쓸어내리며 걱정 가득한 심정을 단숨에 풀어낸 것이 바로 이 시다.
벗을 향한 애틋한 마음이 그대로 들어난다. 시작부터 가슴 저린다.
“죽어 헤어짐은
소리를 삼키며 울고
살아 헤어짐은
그리고 그리며 운다.”
“死别已吞声,生别常恻恻”(사별이탄성, 생별상측측)
뜻글자인 한자의 특성을 너무 잘 살린 문장이다.
측측(恻恻)의 중국 발음은 ‘ce,ce’다. ‘쯔쯔’ 혀끝을 차는 의성어다. 그 뜻도 ‘비통하다’이다. 비통하고 비통한, 그래서 절로 혀끝을 차는 슬픔이 바로 살아 이별이 가져오는 슬픔인 것이다.
살아 이별은 이렇게
죽어 이별과 다르다.
울지만 그 울음이 다르다.
죽어 이별은 이렇게
살아 이별과 또 다른
아픔이 담겨져 있다.
이제 다시는 못 본다는
확정이 없어 나오는 희망의 고통이다.
그런 비통함은
그리움 끝에서
나오는 것이다.
꿈 속 이백의 안색을 창백하기 만하다.
“아 집안 가득 낙월(落月)이
그대 얼굴을 비췄는가?”
“落月满屋梁,犹疑照颜色.”(낙월만옥량, 유의조안색)
다시 벗에게 당부를 한다.
“물 깊고 파도 높은데, 그대!
건강하시게, 살아만 계시게!”
“水深波浪阔,无使蛟龙得”(수심파랑활, 무사교용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