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기는 마음에서만 나오지 않는다. 용기는 준비에서 나온다. 창과 방패를 들어 비로서 나오는 게 용기다. 그런 준비 없이 나오는 용기는 용기가 아니다. 만용(蠻勇)이다. 한자 용(勇)은 이 같은 용기의 이치(理致)를 담고 있다. 사실 용(勇)자는 그 본의를 놓고 많은 해석이 있다. 용(用)이 발음이고 힘(力)이 의미라는 설명이 가장 일반적이다. 용(勇)은 갑골문은 아직 없고 금문에서 등장한다. 용(勇)의 자형은 모두 세 개인데, 하나는 쓸 용(用)에 창 과(戈)가 있으며 다른 하나는 쓸 용(用) 아래 힘 력(力)이 있다. 마지막은 쓸 용(用) 아래 마음 심(心)이 있다. 지금까지 살아남은 글자가 바로 쓸 용(用) 아래 힘 력(力)이 있는 글자다. 용(用)는 일찌감치 갑골문에 나온다. 기본적으로 나무로 만든 물통으로 쓰임을 의미한다고 본다. 혹자는 용(用)을 종(鐘)이라 보기도 한다. 보는 눈마다 다를 수 있지만, 갑골자 용(用)은 볼수록 나무로 만든 물통이다 싶다. 나무로 만든 물통, 그 물통이 용기의 용(勇)에서는 방패 순(盾)의 의미로도 쓰인 게 아닌가 싶다. 그리 보면 금문에 등장하는 세 가지의 용기 용(勇)의 세 가지 의미가 새롭다. 맨 처음은 방패와
중국의 지혜는 대화법에 있다. 직설적이지 않으면서 상대방 입장에서 설명해 상대방이 수긍하도록 하는 게 특징이다. 전국시대 유세가들의 대화법이기도 하다. 전국책에는 다음과 같은 고사가 있다. 유세객의 전형적인 설득 방식을 보여주면서, 실제 멈출 때는 아는 게 얼마나 현명한 것인지도 보여준다. 전국시대 유명한 책사인 소려(蘇厲)가 주나라 황제에게 알려준 계책이다. 당시 상황은 진나라 명장 백기(白起)가 한과 위 두 나라를 패퇴시키고 양나라를 공격하던 때였다. 양나라는 주나라와 순망치한의 관계였다. 소려는 먼저 주 황제에게 백기의 양나라 공격의 위험성에 대해 설명을 한다. "한, 위 두 나라를 패배시키고 위나라 장수 서무를 죽인 명장이 바로 백기 장군입니다. 그는 용병술이 뛰어난데다가 천운마저 타고 났습니다. 그런 백기가 지금 양나라를 공격한다는데 이 양나라도 틀림없이 함락당할 것입니다. 양나라가 깨어지면 주나라가 위험해집니다." 자신의 나라가 위험해진다고 하니 황제도 솔깃해질 수밖에 없다. "무슨 좋은 방법이 없겠소?" 소려가 답했다. "당연히 백기의 공격을 막아야 합니다. 백기에게 한 가지 고사를 이야기 해주면 됩니다." 그리고 이야기 속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모든 씨앗은 그 자람이 결정돼 있다. 벼의 씨는 벼가 되며 보리의 씨는 보리가 된다. 백합 씨는 백합이 되며 난초 씨는 난이 된다. 소나무 씨는 소나무가 된다. 볍씨가 보리가 되는 법이 없으며 난초 씨가 백합이 되는 법이 없다. 식물도 동물도 사람도 모두 마찬가지다. 정해진 씨앗 그대로 자란다. 다만 자란 모습이 다를 뿐이다. 들에서 자란 소나무는 쭉쭉 하늘로 뻗어 자라며, 벼랑 끝에 자란 소나무는 구불구불 굽어 자란다. 나무를 아는 것은 씨앗을 알고 자란 환경을 알아 지금까지 자람을 알고 미래의 성장을 추정하는 것이다. 씨앗부터 현재와 미래를 관통하는 하나의 모습, 바로 본(本)이다. 모양은 쉽지만 어려운 개념이 한자 근본 본(本)이다. 금문에 등장해 나무를 뿌리와 줄기로 나눈 모습이다. 뿌리만이 아니고 줄기만이 아닌 둘을 나눠 모두 아는 게 바로 본(本)이다. 씨앗을 알고 그 씨앗의 싹을 알며 싹의 뿌리를 알고 싹의 줄기를 아는 게 바로 본(本)이다. 지금 눈에 보이는 나무의 뿌리와 줄기는 하나의 씨앗에서 나와 자랐음을 아는 게 바로 본(本)이다. 그래서 본(本)을 알면 그 유래(由來)인 본래(本來)를 알고 본(本)을 알면 그 미래(未來)인 본거(本去
江南有丹橘 经冬犹绿林 jiāng nán yǒu dān jú jīng dōng yóu lǜ lín 岂伊地气暖 自有岁寒心 qǐ yī dì qì nuǎn zì yǒu suì hán xīn 강남에 있는 단귤나무 겨울 지나 다시 푸르네. 그게 어디 봄날만의 덕이랴, 겨울을 견뎌낸 나무 공이지. 당나라 현종 때 재상이었던 장구령(張九齡, 673~740)의 감우십이수(感遇十二首) 중 7수의 일부다. 선비다운 말이 솔깃하게 한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게 세한심(岁寒心)이라는 단어다. 겨울을 이겨내려는 마음이다. 변치 않는 마음, 다른 시에서는 나라에 대한 충정이나 우정을 상징하는 마음으로 나온다. 겨울은 반드시 가고 봄은 반드시 온다. 그러나 다시 온 봄을 맞는 것은 매번 같지가 않다. 어떤 것은 겨울 추위에 그만 삶을 다하고 만다. 이 고통을 이겨내겠다는 마음, 세한심(岁寒心)으로 폭풍한설을 지나고 나서야 봄을 맞는 것이다. 아쉬운 건 역시 너무 선비의 말이라는 점이다. 岁寒心처럼 자주 쓰이는 게 一壶冰心(yī hú bīng xīn; 주전자 속에 담긴 얼음 같은 마음),万里心(wàn lǐ xīn: 멀리 그리는 마음) 등이다. 뭐라 부른들 어떠하랴, 어차피 마음은 하나인 것
작음과 적음을 구분하는 방법! 중국어에서 주어가 무엇이냐에 따라서 쓰이는 동사가 다른 경우가 있다. 한국어로 번역하면 둘 다 맞는 말 같지만 중국어 문법에서는 이상하다는 사실! 工资太“矮” Gōngzī tài “ǎi ” 经理,我要辞职。Jīnglǐ ,wǒ yào cízhí. 매니저님, 저 그만두겠습니다. 为什么?Wèishénme ?이유가 뭔가요? 因为我的工资太矮了!Yīnwèi wǒ de gōngzī tài ǎi le !제 월급이 키가 너무 작아서요! *영어의 ‘low’는 ‘낮다’라는 뜻도 있고 ‘작다’이라는 뜻도 있기 때문에 벌어진 실수이다. 중국에서 월급이 많고 적음은 항상 ‘高’와 ‘低’로 표현한다. 자주 쓰는 표현으로는 ‘工资太高’,‘工资太低’ 등이 있다. 맞는 문구: 因为我的工资太低了!Yīnwèi wǒ de gōngzī tài dī le! 作者:刘志刚画家:宋海东
별(別)은 뼈에서 살을 발라내는 고통이다. 이별(離別)은 그런 아픔을 말한다. 생별(生別)은 살아 이별이요, 사별(死別)은 죽어 이별이다. “死别已吞声,生别常恻恻。” (사별이탄성, 생별상측측: 죽어 이별은 소리 없이 울고, 살아 이별은 그리움에 운다.) 당 시인 두보의 ‘夢李白’(몽이백: 이백을 꿈꾸며) 2수 중 1수다. 탄성(歎聲:소리 치다)이 아니라 탄성(呑聲:소리 삼키다)이다. 같은 단어로 소리 없는 울음이 더 크게 울린다고 표현한 것이다. 恻측은 슬프다는 뜻이다. 測측과 같이 쓰여 헤아리다. 그리다는 뜻도 떠올리도록 한다. 恻恻측측은 슬프고 슬프다는 의미다. 恻恻측측 중국 발음은 cece쳐쳐다. 혀끝 차는 소리다. 두보가 먼 길을 떠나 소식없는 벗 이백을 꿈에서 보고 ‘혹 잘못됐을까’ 놀라 쓴 시다. 이별의 시다. 생별이나 사별이나 한쪽의 감정이다. 이별을 당한 떠난 이를 기다리는 남은 자의 감정이다. 남은 자는 산 자다. 살아 숨 쉬며 살아 그리는 이다. 이별의 고통은 이렇게 남은 자의, 산 자의 몫이다. 동양의 선인들은 일찍이 이별의 고통을 알았다. 일찍이 갑골문에 등장하는 죽음 사(死)는 떠난 이 앞의 산 자의 모습이다. 죽음은 마치 뼛조각처
"명나라를 치려하니 길을 빌려달라" 1592년 일본의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의 선조에게 '정명가도(征明假道)'의 글귀가 담긴 편지를 보낸다. 선조는 이 편지를 선전포고로 봤다. 하지만 조선은 "뭐 이런 게 다 있어"하며 무시했다. 앞서 수많은 경고, 특히 이율곡의 10만 양병설도 불필요한 것으로 일축했던 조선의 사대부들이었다. 본래 무능은 무지에서 나오는 법이다. 결국 조선은 일본의 침략에 무너졌다. 왕은 북쪽 변방 의주까지 도망가야 했다. "A를 하려고 하니 B를 달라" 일본 요구의 구조다. 사회에서 흔히 일어나는 갑질 요구다. 황당하지만 거절하기 힘들다. 갑질을 하는 이들은 자신이 갑인 이유를 분명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무시를 하면 임진왜란처럼 그 대가가 크다. 이 때 필요한 게 계략이다. 계략은 궁극의 도다. 중국 전국시대, 강대국이 이웃 약소국을 괴롭히는 일이 적지 않았다. 일본이 조선에 했던 '가도(假道)의 요구'도 흔하게 있었다. 한번은 진나라가 한나라를 치겠다고 주나라(동주)에게 길을 빌려줄 것을 요구했다. 주나라는 길을 빌려주면 한나라에게 미움을 살 것이요. 거절하면 진나라에게 미움을 받을까 두려웠다. 대책회의를 했다. 이 때 한 대신이 말
목적을 가지고 움직여 결과를 내는 것을 '일 한다'고 한다. 간단히 일이란 수식은 '결과= 목적한 움직임 x 시간'이다. 인간의 움직임을 노동이라고 한다. 일의 결과는 노동 투입량에 대한 시간의 곱인 것이다. 사람들의 노동이 한결같다고 한다면 일의 결과 값은 항상 같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투입되는 노동의 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어떤 노동은 1의 결과를 내지만 어떤 노동은 2혹은 3의 결과를 낸다. 개인 간 재능의 차이도 있지만 도구의 차이도 있다. 사실 재능보다 결정적인 게 바로 도구의 차이다. 칼과 총 간의 차이라 할까. 도구는 일의 결과를 바꾸는 가장 중요한 변수다. 일이란 수식은 (사람x도구)가 구해질 때 가장 정확한 결과가 나온다. 도구는 일이라는 방정식의 가장 중요한 변수인 것이다. 동양에서는 일찍이 이 같은 일의 도리를 알았다. 한자 공(工)에 그 이치가 담겨 있다. 일찍이 갑골자부터 등장한 공(工)은 위로 손잡이가 있는 칼이다. 살상(殺傷)의 흉기(凶器)가 아닌 재단(裁斷)의 도구(道具)다. 도구를 든 사람이 바로 공이다. 일의 수식에서 (사람x도구)가 바로 공(工)인 것이다. 한자의 공이 일이다 보니, 그 뜻이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멍~멍, 독고여유. 잘 지내시쥬? 사람 세상 참 시끄럽쥬? 중국 탓이 크네유. 쓸데없이 미국에 풍선이나 날리고 말이유. 아이고 개가 봐도 개떡 같네유. 아 그런데 왜 사람들은 이럴 때 하필 ‘개떡’이라 허지유? 다른 떡도 많구먼 말이쥬, 개만 우습다 이거쥬? 그럼 안되유. 상대방이 약하다고 우습게 보고, 그게 소인배들이나 하는 짓이쥬. 중국이 그려지유. ‘Full of 소인배’유. ‘중국의 간첩 풍선’, 미국은 아예 이렇게 부르더구먼유. 미국이 아니라 캐나다에서도 또 발견해 격추를 했다고 허지유. 뭘 그렇게까지 하나, 싶지유? 실은 중국이 본래 그려유. 역사가 잘 보여주지유. 나라만 크지, 사람들은 다 밴댕이 속이구먼유. 만만해 보이면 속내를 드러내지유. 요즘 한국이 만만허쥬. 참 그러고 보니, 한국이 중국인에 대한 비자 발급을 제한했다고 해서 중국도 한국인에 대한 비자 발급을 같이 중단한 일이 있쥬? 이 말만 들으면 그런가보다 하겠지만, 당시 중국은 코로나가 재창궐해서 만연할 때지유. 한국은 거꾸로 안정돼 가는 상황이구유. 뭔가 좀 이상허쥬? 중국이 떼쓴다 싶잖여유. 본래 옛 조선 사람들이 ‘중국 떼놈’이라고 했다지유? 그나마 한국이 비자 발급을 재개한다고
누가 있어 스스로를 낮춰 천해지려 할까. 누가 있어 스스로 더러워지며 남을 깨끗이 하려할까. 누가 있어 많고 적고의 높고 낮고의 차별 없이 공평할 수 있을까. 누구 있어 존재만으로 남에게 생명을 줄까. 물 수(水)의 덕(德)이다. 물 수(水)는 가장 오래된 한자 중 하나다. 강의 물이 흐르는 모습이다. 항상 중심을 잡는 중봉(重峯)의 수류(水流)와 항상 넘치며 물길을 넓히는 지류(支流), 변연(边沿)의 각 두 획으로 이뤄져 있다. 도도히 흐르는 강물의 반짝임을 표현한 듯도 싶다. 내 천(川)이 급속히 흐르는 물이라면 물 수(水)는 멈춘 물이라 할까. 큰 내 강(江)과 바다 해(海) 모든 물을 대표한 자가 바로 물 수(水)다. 항상 물은 높은 곳을 버리고 낮은 곳에 임하며 항상 물은 스스로를 더럽혀 돌과 동물에 묻은 더러움을 닦아 준다. 항상 물은 크고 작은 모든 구덩이를 채워야 비로소 다시 흐른다. 항상 물은 바위를 만나 피해 흐르지만 결국 천년 바위의 모양을 바꾸고 결국 그 바위를 깨뜨린다. 물은 낮은 곳을 채워 강을 이루며 바다를 이룬다. 사해의 모든 물이 결국 바다를 만든다. 바다의 장엄함은 다른 게 아니다. 차별이 없어 한 없이 커진 규모에서 나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