径万里兮度沙漠,为君将兮奋匈奴。 jìng wàn lǐ xī dù shā mò ,wéi jun1 jiāng xī fèn xiōng nú 。 路穷绝兮矢刃摧,士众灭兮名已隤。 lù qióng jué xī shǐ rèn cuī ,shì zhòng miè xī míng yǐ tuí 。 老母已死,虽欲报恩将安归? lǎo mǔ yǐ sǐ ,suī yù bào ēn jiāng ān guī ? 아, 돌아보니 만리 길, 사막을 건넜구나. 큰 칼 차고, 흉노를 쫓아온 이 길 갈수록 흉한데 활은 떨어지고, 죽어 이름도 못남긴 병사들이여. 고향 늙은 어미마저 그대들 곁으로, 아 어디로 가야 은혜를 갚을까? 이국만리 타향 전쟁터에서 받아든 어머니의 사망 소식, 어찌 이런 비통함이 있으랴. 바로 한나라 장수 이릉(李陵 BC134 ~ BC74)이 남긴 시 별가(别歌)다. 이릉은 한 무제의 명을 받고 흉노 토벌에 나섰다가 적의 작전에 휘말려 악전고투 끝에 포로가 되고 만다. 아쉽게도 이 패배가 이릉에게는 진정한 불행의 시작이었다. 누군가 한 무제에게 이릉이 변절해 흉노군을 훈련시키고 있다고 모함을 해 분노한 한 무제가 이릉의 가족 모두를 몰살시켰다. 이 때 이릉은 한나라에 대한 충성을 굽히지
楼观沧海日 门对浙江潮 lóu guān cāng hǎi rì mén duì zhè jiāng cháo 누각 저 멀리 푸른 바다 해 보이고 문 너머 저장의 파도소리 들리네. 당나라 시인 송지문(宋之問, 656~710)의 시 '영은사(灵隐寺)'의 한 구절이다. 번역을 하면 맛이 떨어진다 싶을 정도로 한자의 쓰임이 절묘하다. 눈에 보이는 해의 경치와 들리는 파도 소리를 절묘하게 대비시켰다. 그런데 보는 것도 관(觀)이며 그 대비가 들리는 문(聞)이나 아니라 대응해 오는 대(對)이다. 소리를 마치 보는 듯 표현해 의미적 대비를 살리면서 성조의 대비로 운율도 살렸다. 읽으면 읽을수록 맛나는 구절이다. 이 시에는 재미있는 일화가 있다. 당대 두 천재 시인이 동시에 등장한다. 송지문과 낙빈왕(骆宾王, 626~687)이 두 주인공이다. 영은사는 한 고승이 저장성 항저우 북서쪽에 있는 한 산을 두고 "아 언제 천축의 산이 이리 날아왔던가? 부처의 영이 숨겨진 곳이로구나"라고 평가해 이를 기념해 지어진 절이다. 한마디로 경치가 매우 빼어나다는 의미다. 어느날 송지문이 영은사에 머물며 시를 지었는데 첫 구절이 "높은 봉우리 수풀 우거지고, 문 닫힌 용궁은 적막하기만 하네(鹫岭郁岧
“前不见古人 qián bú jiàn gǔ rén 后不见来者 hòu bú jiàn lái zhě 念天地之悠悠 niàn tiān dì zhī yōu yōu 独怆然而涕下 dú chuàng rán ér tì xià” 내 앞에도 옛사람 보이지 않고 내 뒤에도 오는 사람이 없구나! 막막한 천지 나 홀로 둘러보고 돌연히 떨어지는 한 줄기 눈물. 당나라 초기 시인 진자앙(陈子昂, 659~700)의 '등유주대가(登幽州台歌)'이다. 진자앙의 자는 백옥(伯玉)이며 광택(光宅) 원년(684년)에 과거에 급제했다. 광택은 측천무후가 실권을 행사하기 시작했던 시기의 연호여서 '무후연호'라고도 한다. 진자앙은 이때 진사가 돼 측천무후의 아낌을 받았으나 무후의 교만 방탕함에 실망해 그를 시에서 수없이 풍자한다. 이 시는 진자앙이 무유의(武攸宜)의 작전 참모로 있던 시절 썼다고 한다. 토벌 작전에 선봉장이 되길 간청했으나 거절당하자 비분강개해 썼다는 설이 있다. 진자앙의 성격이 그랬던 것 같다. 옳다고 판단한 일은 앞에 끌어주는 이 없어도 매진을 하고, 뒤따르는 이 없어도 포기하지 않았으리라. 등유주대가(登幽州台歌)에서도 그의 성품을 확인할 수 있다. 이렇게 짧게, 이렇게 단순히 세상의
翻手作云覆手雨, 纷纷轻薄何须数。 fān shǒu zuò yún fù shǒu yǔ, fēn fēn qīng báo hé xū shù 。 君不见管鲍贫时交, 此道今人弃如土。 jun1 bú jiàn guǎn bào pín shí jiāo, cǐ dào jīn rén qì rú tǔ 。” 구름처럼 모였다 비처럼 흩어지듯 사람들 얼마나 경박한가 그대, 관중과 포숙아의 가난할 때 사귐을 아는가? 지금 사람들은 그 사귐을 흙처럼 버리는구나 당나라 시성 두보(杜甫, 712~770)의 시 '빈교행(贫交行)'이다. 가난할 때의 사귐. 시 제목만으로 이미 풍기는 분위기가 범상치 않다. 번역을 더 자세히 하면 시감이 깨진다. 한문의 축약과 운율의 효과를 최대한 살렸다. 좀 더 길어지면 시가 아니라 산문이 됐을거다. 관포지교는 춘추시대 제(齐)나라의 관중(管仲)과 포숙아(鲍叔牙)의 이야기다. 어린 시절 서로를 잘 알고 친했던 관중과 포숙아가 서로 다른 이를 보필해 제나라 군주 자리를 놓고 다퉜다. 마침내 포숙아가 모시던 이가 제나라 군주가 된다. 바로 환공(桓公)이다. 권력투쟁에서 패해 관중이 죽을 위기에 처하자 포숙아는 환공에게 간청을 한다. "한 나라의 군주에 만족하신다면
七月七日长生殿, 夜半无人私语时。 qī yuè qī rì zhǎng shēng diàn, yè bàn wú rén sī yǔ shí 。 在天愿作比翼鸟, 在地愿为连理枝。 zài tiān yuàn zuò bǐ yì niǎo, zài dì yuàn wéi lián lǐ zhī 。 天长地久有时尽, 此恨绵绵无绝期。 tiān zhǎng dì jiǔ yǒu shí jìn, cǐ hèn mián mián wú jué qī 。 칠월 칠석 서로의 품에서 그날 밤 우린 속삭였지요. 하늘에선 비익조 되고, 땅에선 연리지 되리라. 이 하늘과 땅이 먼지 될지언정, 우리 한恨만은 끊이질 않네요. 아 사랑하는 님아, 우리 한 몸이 돼 하늘에서 비익조가 되고, 저 땅에선 연리지가 되자. 그래서 이 하늘, 이 땅이 먼지 되는 그 순간까지, 하나로 날고, 하나로 자라자. 사실 너무 유명해서 설명이 필요 없는 장한가(长恨歌)의 마지막 구절이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 772~846)의 '장한가'는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사시로 꼽힌다. 백거이는 자가 낙천(乐天)이다. 호는 취음(醉吟)선생, 향산(香山)거사다. 호에서 보이듯 술을 좋아했다. 가난한 선비 집안에서 태어나 평생 가난한 사람들을
我昔未生时,冥冥无所知。 wǒ xī wèi shēng shí ,míng míng wú suǒ zhī 。 天公强生我,生我复何为? tiān gōng qiáng shēng wǒ ,shēng wǒ fù hé wéi ? 无衣使我寒,无食使我饥。 wú yī shǐ wǒ hán ,wú shí shǐ wǒ jī 。 还你天公我,还我未生时。 hái nǐ tiān gōng wǒ ,hái wǒ wèi shēng shí 。 나 아직 태어나기 전 그 때, 깜깜한 어둠 속에서 아무 것도 몰랐네 하늘이 나를 태어나게 했지, 하늘은 도대체 왜 나를 낳았을까? 옷이 없어 추위에 떨고, 음식도 없어 배만 주리는데 하늘이시여! 나를 돌려줄테니 태어나기 전 그 때로 돌아가게 해주길. 수나라 말기에서 당나라 초기에 활동한 왕범지(王梵志, 590~660 추정)의 시다. 짧고 간결한 문장이다. 간단히 사는 게 힘든데, 도대체 삶이 무엇인지 묻는다. 고고함을 추구하는 시인들과는 좀 어울리지 않는다. 요즘 말하는 구어체로 쓰인 시다. 그래서 의미를 한 번 더 생각하는 맛은 없다. 그러나 순수하게 삶의 어려움과 삶의 목적에 대한 고민을 써내려간 게 느껴진다. 가다듬은 감성에서 나오는 절제된 울림은 한시의 기본
舍南舍北皆春水, 但见群鸥日日来。 shě nán shě běi jiē chūn shuǐ, dàn jiàn qún ōu rì rì lái 。 花径不曾缘客扫, 蓬门今始为君开。 huā jìng bú céng yuán kè sǎo, péng mén jīn shǐ wéi jun1 kāi 。 盘飧市远无兼味, 樽酒家贫只旧醅。 pán sūn shì yuǎn wú jiān wèi, zūn jiǔ jiā pín zhī jiù pēi 。 肯与邻翁相对饮, 隔篱呼取尽余杯。 kěn yǔ lín wēng xiàng duì yǐn , gé lí hū qǔ jìn yú bēi 。 초당 주변으로 온통 봄기운 가득하고, 갈매기들은 날마다 날아오네 꽃잎 떨어진 길 그대로 두고, 싸리문 활짝 열어 오는 그대를 기다리네 장터가 멀어 가지 못해 초라한 안주, 넉넉하지 못한 형편에 술은 오래 묵은 탁주뿐 그대만 좋다면 이웃의 말솜씨 좋은 영감 불러내 남은 술 함께 마시세 말년 행복이라는 게 뭘까? 산 좋고 물 좋은 곳에 집을 짓고 조용한 서재에서 책을 읽고 산책하는 게 일상인 생활은 어떨까? 가끔, 산해진미는 아니어도, 탁주에 푸성귀가 전부라 해도 이웃, 친구와 왁자지껄 즐거운 술상을 함께 할 수 있다
言入黄花川,每逐清溪水。 yán rù huáng huā chuān ,měi zhú qīng xī shuǐ 。 随山将万转,趣途无百里。 suí shān jiāng wàn zhuǎn ,qù tú wú bǎi lǐ 。 声喧乱石中,色静深松里。 shēng xuān luàn shí zhōng ,sè jìng shēn sōng lǐ 。 漾漾泛菱荇,澄澄映葭苇。 yàng yàng fàn líng xìng ,chéng chéng yìng jiā wěi 。 我心素已闲,清川澹如此。 wǒ xīn sù yǐ xián ,qīng chuān dàn rú cǐ 。 请留盘石上,垂钓将已矣。 qǐng liú pán shí shàng ,chuí diào jiāng yǐ yǐ 。 황화천에 가려면 언제나 청계의 물줄기를 따라가기 마련이라네 물줄기는 산세를 따라 수만 번 굽이치지만 가는 길은 백리길이 되지 않네 흐트러진 돌 사이로 흐르는 물소리 요란해도 소나무숲 정취는 깊고 고요하다네 일렁이는 물결에 마름과 노랑어리연꽃이 떠 있고 맑은 수면 아래에는 갈대 그림자 내 마음의 한가로움이 청계의 맑음과 닮았으니 바라건대 너른 바위 위에 낚싯대 드리우고 은일하며 살고 싶어라 당나라 시인 왕유(王維 700~761
江南有丹橘 经冬犹绿林 jiāng nán yǒu dān jú jīng dōng yóu lǜ lín 岂伊地气暖 自有岁寒心 qǐ yī dì qì nuǎn zì yǒu suì hán xīn 강남에 있는 단귤나무 겨울 지나 다시 푸르네. 그게 어디 봄날만의 덕이랴, 겨울을 견뎌낸 나무 공이지. 당나라 현종 때 재상이었던 장구령(張九齡, 673~740)의 감우십이수(感遇十二首) 중 7수의 일부다. 선비다운 말이 솔깃하게 한다. 가장 마음에 드는 게 세한심(岁寒心)이라는 단어다. 겨울을 이겨내려는 마음이다. 변치 않는 마음, 다른 시에서는 나라에 대한 충정이나 우정을 상징하는 마음으로 나온다. 겨울은 반드시 가고 봄은 반드시 온다. 그러나 다시 온 봄을 맞는 것은 매번 같지가 않다. 어떤 것은 겨울 추위에 그만 삶을 다하고 만다. 이 고통을 이겨내겠다는 마음, 세한심(岁寒心)으로 폭풍한설을 지나고 나서야 봄을 맞는 것이다. 아쉬운 건 역시 너무 선비의 말이라는 점이다. 岁寒心처럼 자주 쓰이는 게 一壶冰心(yī hú bīng xīn; 주전자 속에 담긴 얼음 같은 마음),万里心(wàn lǐ xīn: 멀리 그리는 마음) 등이다. 뭐라 부른들 어떠하랴, 어차피 마음은 하나인 것
闲云单影日悠悠, 物换星移几度秋 xián yún dān yǐng rì yōu yōu , wù huàn xīng yí jǐ dù qiū 阁中帝子今何在,槛外长江空自流 gé zhōng dì zǐ jīn hé zài ,kǎn wài zhǎng jiāng kōng zì liú 한 조각 구름 그림자 수면에 비추고 해는 한가롭기만한데, 만물이 순환하고 별들도 자리를 옮기니 몇 해가 지났던가? 누각에서 놀던 황제의 아들(등왕)은 지금 어디로 가고, 난간 너머 장강만 홀로 덧없이 흐르네 당나라 시인 왕발(王勃, 647~675)의 등왕각서(藤王阁序;秋日登洪府滕王阁饯别序) 후반부다. 등왕각은 중국 장시(江西)성 난창(南昌)시에 있는 누각이다. 당나라 고조 이연의 아들인 등왕(藤王) 이원영이 653년 세웠다. 시는 676년 중양절(음력 9월 9일)에 왕발이 등왕각에서 열린 연회에 참석해 지었다고 전해진다. 왕발은 몇 개의 시어로 무심한 하늘의 도(道)와 무상한 인간사를 짚었다. 시의 다른 부분도 명문이지만, 삶의 도리를 담은 담담한 이 구절이 가슴에 와닿는다. 특히 日悠悠와 几度秋는 정말 기막힌 대구(對句)다. 두 말만 보면 “해는 한가롭기만한데 몇 해나 그랬소?” 라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