翻手作云覆手雨, 纷纷轻薄何须数。 fān shǒu zuò yún fù shǒu yǔ, fēn fēn qīng báo hé xū shù 。 君不见管鲍贫时交, 此道今人弃如土。 jun1 bú jiàn guǎn bào pín shí jiāo, cǐ dào jīn rén qì rú tǔ 。” 구름처럼 모였다 비처럼 흩어지듯 사람들 얼마나 경박한가 그대, 관중과 포숙아의 가난할 때 사귐을 아는가? 지금 사람들은 그 사귐을 흙처럼 버리는구나 당나라 시성 두보(杜甫, 712~770)의 시 '빈교행(贫交行)'이다. 가난할 때의 사귐. 시 제목만으로 이미 풍기는 분위기가 범상치 않다. 번역을 더 자세히 하면 시감이 깨진다. 한문의 축약과 운율의 효과를 최대한 살렸다. 좀 더 길어지면 시가 아니라 산문이 됐을거다. 관포지교는 춘추시대 제(齐)나라의 관중(管仲)과 포숙아(鲍叔牙)의 이야기다. 어린 시절 서로를 잘 알고 친했던 관중과 포숙아가 서로 다른 이를 보필해 제나라 군주 자리를 놓고 다퉜다. 마침내 포숙아가 모시던 이가 제나라 군주가 된다. 바로 환공(桓公)이다. 권력투쟁에서 패해 관중이 죽을 위기에 처하자 포숙아는 환공에게 간청을 한다. "한 나라의 군주에 만족하신다면
放下工作 Fang xià gōngzuò 일을 바닥에 내려놓다 “放下书包”我知道是什么意思。 “Fàng xià shūbāo ”wǒ zhīdào shì shénme yìsi. “放下书包(가방을 내려놓다)”는 저도 무슨 뜻인지 알겠어요. “放下电脑”我也明白。 “Fàng xià diànnǎo ”wǒ yě míngbai. 放下电脑(컴퓨터를 내려놓다)”도 알겠고요 可是,“放下工作”我就不明白了。 Kěshì ,“fang xià gōngzuò ”wǒ jiù bù míngbai le. 그런데 “放下工作(일을 바닥에 내려놓다)”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工作”怎么能放下呢? “Gōngzuò ”zěnme néng fàng xià ne ? “工作(일)”을 어떻게 바닥에 내려놓죠? * 放下[fàngxià] : 1.[동사] (물건을) 내려놓다. 2.[동사] 내버려 두다. 진행을 멈추다. 3.[동사] 넣다. 수용하다. 放下+사물: 어떤 물건을 바닥에 내려 놓다. 放下工作: 일의 진행을 멈추다, 그만 두다. 한 단어에도 여러가지 의미를 내포하고 있고 목적어에 따라 뜻이 달라진다. 作者:刘志刚 画家:宋海东
생각은 심장에서 머리끝이다. 그 길이는 화성과 지구보다 길다. 수많은 것으로 그 길이 채워진다. 생각이 많은 이유다. 마음이 답답한 이유다. 생각은 심장에서 머리끝까지 바로 이어질 때 맑다. 봄날의 따뜻한 햇살 속을 걷듯 서둘지 않아도 발걸음이 가볍고 빠르며 마음이 순창(順暢)해 진다. 금문의 생각 사(思)가 전하는 도리(道理)다. 생각이란 심장에서 머리끝이 이어지는 것이라는 게다. 생각의 길에 장애가 많은 게 어리석음이다. 금문에 등장하는 어리석을 우(愚)는 심장에서 머리로 가는 길이 막혀 있다. 가슴에서 싹튼 것이 뭔가에 가로막혀 전해지지 않는 것이다. 생각이 이어지지 않고 자꾸 끊어지며 잡념에 빠지는 게 바로 어리석음이다. 대학에 생각이 바르지 않으면 들어도 듣지 못하고 음식을 먹어도 맛을 느끼지 못하고 보고도 보지 못한다고 했다. 사물의 진정한 격(格)을 구분하지 못하니, 본말이 뒤집히고 진정한 결실을 구하지 못한다. 내가 진정 안다는 것은 내가 아는 대로 사물의 결과가 나오는 것인데 스스로 똑똑하다는 많은 이들은 사물의 결과로 증명받기보다 안다는 것만 인정받으려 한다. 결과는 다툼이다. 다투다가 결실을 잃는다. 둘 다 아는 대로 이뤄지지 않으니,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걸어라. 그리고 반드시 승리하라! 이기는 자만이 발언권이 있는 법이다. 아름다운 패배는 말 그대로 아무리 아름다워도 패배일 뿐이다. 이기지 못한 자의 변명일 뿐이다. 아름다운 패배를 칭송하더라도, 꼭 결정적인 순간에 치졸한 승리를 택해야 하는 법이다. 아름다운 패배가 아무리 아름답다고 해도 아름다운 승리만은 못한 법이다. 아쉽게도 아름다운 패배자에게는 영원히 아름다운 승리를 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치졸한 승리라도 승리한 자만이, 살아남은 자만이 아름다운 승리를 취할 권리가 있는 법이다. 승리는 그런 절실한 자만이 갖는 전리품이다. 전국책에는 의양성을 공략하는 감무의 절실함이 잘 나타난다. 진나라 군대를 이끌고 의양성을 공격했던 감무는 타국인으로 진나라에서 출세를 했다. 진나라 내부에는 그를 시기해 헐뜯는 이들이 있었고, 그가 진나라에 의탁하면서 그에게 원한을 가진 이들이 호시탐탐 감무의 실각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그런 감무가 당대 최강이라는 진나라 군대를 이끌고 의양성을 공격했지만 의양성은 굳건히 버티고 있었다. 무엇보다 의양성의 강력한 성벽이 큰 이유였지만, 공격 명령에도 몸을 사리는 진나라 군사들의 탓도 컸다. 감무가 의양성을 공
听话 말을 듣다 妈妈,我想吃冰淇淋! Māma ,wǒ xiǎng chī bīngqílín ! 엄마,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요. 不行,今天太冷了,听话! Bù xíng ,jīntiān tài lěng le ,tīnghuà ! 안돼, 오늘은 너무 추워, 우리 아이 착하지? 老师,那个妈妈很奇怪! Lǎoshī ,nà gè māma hěn qíguài! 선생님, 저 아이의 엄마가 이상해요! 为什么她说“听话”?那个孩子在听她说话啊! Wèishénme tā shuō “tīnghuà ”?nà gè háizi zài tīng tā shuōhuà a ! 왜 자꾸 “말을 들어”라고 하죠? 저 아이는 안 그래도 엄마 말을 듣고 있잖아요! * 听话 [tīnghuà]: 1. [동사] 말을 듣다. 2. [동사] (어른·윗사람의) 말을 잘 듣다〔따르다〕. 순종하다. 3. [동사] (가축·기구 등이) 말을 잘 듣다. 부리기 편하다. 이용하기 편리하다. 听话를 문자 그대로 직역하려면 “귀로 말을 듣다”일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의)말을 잘 듣다, 따르다”는 의미로도 자주 쓰이는 표현이다. 作者:刘志刚 画家:宋海东
지혜롭고 싶은가? 슬기롭고 싶은가? 지혜의 본질이 뭔지 알아야 한다. 지혜의 본질은 하나다. 지혜는 정보다. 정보의 양이 지혜의 깊이다. 정보가 많을수록 정보가 다양할수록 지혜의 폭도 지혜의 깊이도 넓고 깊어진다. 세상의 정보는 눈과 귀로 접한다. 동영상의 시대는 눈이지만, 과거 고대에는 귀였다. 귀를 열어 놓아 많은 이야기를 듣는 게 바로 지혜의 시작이었다. 기억력이 좋다, 영리하다는 뜻의 총명(聰明), 그 중에서도 총(聰)의 시작은 귀(耳)에 있다. 갑골자에서 총(聰)은 귀와 생각 사(思)의 회의다. 사(思)는 심장에서 머리를 말한다. 사(思) 위 부분은 신생아 머리의 열린 부분을 형상화한 부호다. 신생아의 대천문을 말한다. 중국 바이두에서는 총(聰)의 생각 사(思)부분을 그냥 귀로 마음의 창을 여는 것이라 설명한다. 그 역시 멋진 해석이다 싶다. 듣고 생각하는 게 총(聰)이라는 해석이다. 귀로 마음의 창문을 연다는 해석과 그 본의를 다르지 않다. 중요한 것은 지혜는 남의 말을 듣는 데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 말을 놓고 생각하는 데 지혜의 완성이 있다. 듣고 생각해 자신의 것으로 만들 때 귀로 들은 데이터가 정보로 쌓이고 정보가 쌓이는 게 바로 지혜가
七月七日长生殿, 夜半无人私语时。 qī yuè qī rì zhǎng shēng diàn, yè bàn wú rén sī yǔ shí 。 在天愿作比翼鸟, 在地愿为连理枝。 zài tiān yuàn zuò bǐ yì niǎo, zài dì yuàn wéi lián lǐ zhī 。 天长地久有时尽, 此恨绵绵无绝期。 tiān zhǎng dì jiǔ yǒu shí jìn, cǐ hèn mián mián wú jué qī 。 칠월 칠석 서로의 품에서 그날 밤 우린 속삭였지요. 하늘에선 비익조 되고, 땅에선 연리지 되리라. 이 하늘과 땅이 먼지 될지언정, 우리 한恨만은 끊이질 않네요. 아 사랑하는 님아, 우리 한 몸이 돼 하늘에서 비익조가 되고, 저 땅에선 연리지가 되자. 그래서 이 하늘, 이 땅이 먼지 되는 그 순간까지, 하나로 날고, 하나로 자라자. 사실 너무 유명해서 설명이 필요 없는 장한가(长恨歌)의 마지막 구절이다. 당나라 시인 백거이(白居易, 772~846)의 '장한가'는 중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사시로 꼽힌다. 백거이는 자가 낙천(乐天)이다. 호는 취음(醉吟)선생, 향산(香山)거사다. 호에서 보이듯 술을 좋아했다. 가난한 선비 집안에서 태어나 평생 가난한 사람들을
사람은 조언을 들어 보다 나은 결정을 한다. 인류가 발전을 하는 가장 중요한 기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소통이다. 하지만 조언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아니 들었으면 좋았을 조언도 많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도 ‘천려일실’(千慮一失:천 번을 생각해 한 번 실수할 때가 있다)하고 아무리 모자란 사람도 ‘천려일득’(千慮一得:천 번을 생각해 한 번 옳을 때가 있다)의 순간이 있는 법이다. 그럼 조언을 들을 때는 어떤 것을 듣는 게 좋을까. 전국책에 다음과 같은 고사가 있다. 하루는 진나라 무왕이 명의 편작을 만났다. 무왕은 편두통과 같은 증세를 앓고 있었다. 심한 두통이 오곤 했다. 편작은 당대 최고의 의사다. 죽지만 않으면 고치지 못하는 병이 없다고 했다. 무왕이 증세를 설명하자, 편작이 고쳐보겠다고 했다. 시술을 앞두고 이번엔 왕이 신하들과 상의를 했다. “그래 편작이 고쳐준다는 데 어떻게 하는 게 좋겠소.” 무왕의 말에 신하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 “대왕의 병은 귀 앞과 눈 아래에 있습니다. 치료한답시고 잘못하다가는 오히려 귀가 멀거나 눈이 멀지도 모릅니다.” 신하들의 말에 겁이 난 무왕이 편작을 다시 만났다. “대신들의 걱정이 참으로 많소. 어쩌면 좋겠
강하다는 건 활을 들고 말하는 것이다. 말에 앞서 활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 말을 들을 수밖에 없도록 하는 것이다. 마치 영화 대부(代父) 속 대부가 상대방 머리에 총을 겨누고 “거절하지 못할 제안”을 하듯 활을 겨누고 말을 하는 게 바로 강(强)이다. 갑골자 강이 보여주는 도리다. 입구 위에 활이 보인다. 금문에 와서 오늘날 강(强)처럼 충(蟲)이 붙는다. 갑골자 강(强)이 클 홍(弘)으로 변한 뒤 그 아래 파충류를 의미하는 충(蟲)이 붙었다는 게 일반적인 설명이다. 큰 도마뱀이 혹 거대한 곤충이 보여주는 공포가 바로 강(强)인 것이다. 갑골이나 금문이나 강하다는 건 한 의미다. 바로 말이 말로 끝나지 않는 것이다. 활로 힘으로 말을 이루는 것이다. 중국 고대 ‘바르다’는 의미의 정(正)이 힘으로 얻어내는 것이듯 강하다는 건 ‘크라토스의 로고스’(권력의 말) 힘으로 이뤄지는 말이다.
중국어에는 여러가지 뜻이 있는 단어가 있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 쓰인 말인지 꼭 확인해야 한다! 老师,我查了词典,“口水”是口里流出来的东西,对吗? Lǎoshī ,wǒ chá le cídiǎn ,“kǒushuǐ ”shì kǒu lǐ liú chūlái de dōngxi ,duì ma ? 선생님, 제가 사전을 찾아봤어요. “口水(침)”은 입안에서 흘러나오는 것 맞죠? 对啊,有点儿恶心。 Duì a ,yǒudiǎner ěxīn. 맞아요, 속이 매슥매슥하네요. 那我就更不明白了,中国朋友很不礼貌。 Nà wǒ jiù gèng bù míngbái le ,Zhōngguó péngyou hěn bù lǐmào. 그럼 더 이해가 안돼요. 제 중국인 친구들은 정말 무례해요. 因为我的中国朋友经常对我说:“喝口水!” Yīnwèi wǒ de zhōngguó péngyou jīngcháng duì wǒ shuō :“hē kǒu shuǐ !” 왜냐면 중국친구들이 저한테 이런말을 자주 하거든요. “침(물 좀) 마셔!” *이것은 전형적인 歧义句이다. 歧义句는 두가지 다른 의미로 이해할 수 있는 말을 뜻한다. 친구들이 말할 때 잘 들어보면 "口"의 성조로 두 가지 의미 중 어떤 뜻인지 판단할 수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