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민간기업 심포지엄에 참석한 기업가들 하나 하나가 글로벌 시장이 주목하는 인물들이다. 하지만 그 중에서도 스타는 단연 마윈이었다. 관련 뉴스가 이미 심포지엄 사흘 전 로이터를 통해 나왔을 정도다. 마윈의 심포지엄 참가 소식이 전해지자, 해당 소식은 인터넷에서 빠르게 입소문을 탔다, '마윈 사망'이 SNS에서 화제가 됐고, 알리의 주가도 급등했다. 마윈의 위기는 지난 202년 11월 온라인 결재부분에서 사업성을 인정 받은 앤트그룹의 상하이와 홍콩에 동시 상장 계획을 추진하면서였다. 성공할 경우 세계 최대 규모의 IPO가 될 약 340억 달러를 조달할 것으로 예상됐다. 그러나 2020년 10월 상하이에서 열린 분드 파이낸스 서밋에서 잭 마는 중국의 금융 규제 시스템에 공개적으로 의문을 제기하며 전통적인 은행들이 "전당포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며 혁신에 대한 규제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발언은 규제 당국을 화나게 하는 주된 원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 사안에 정통한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시진핑 국가주석이 마윈의 세간의 이목을 끈 비판에 불만을 갖고 직접 앤트뱅크의 상장 중단을 지시했다고 전했다. 앤트의 상장이 종료된 후,
시 주석의 발언이 있고, 심포지엄이 끝나자마자 중국 국영언론들은 일제 “민영 기업이나 국영 기업이나 모두 중국의 기업들”이라는 선언을 하기 시작했다. 중국 국영 언론은 “민간 기업이 ‘자신의 국민’으로 국가에서 ‘탈퇴’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더 큰 무대로 이동할 수 있다”라는 홍보를 이어갔다. 그 이후 시 주석은 이와 유사한 회의를 세 차례 개최했다. 하지만 이후 어느 회의도 '민간기업 심포지엄'이라고 불리지는 않았다. 국영 기업들이 참석했기 때문이다. 간단히 구성원의 특성상 민간기업 심포지엄이라 부르기 적절치 않았던 것이다. 결국 2018년 11월 1차 민간 기업 심포지엄은 당대 만연한 민간 기업들의 불안이 경제에 영향을 미치자, 시 주석이 직접 나서 분위기를 반전시킨 것이다. 2018년 11월 민간기업 심포지엄 이후 중국 당국은 이후 '28개 조항'을 발표하며 민간 기업 지원에 나섰다. 이 같은 중국 당국의 대규모 지원은 2005년 1월 공표된 '36개 비공개조항', 2010년 5월 공표된 '새로운 36개 조항' 등과 함께 시 주석 집권이래 발표된 3대 고위급 지원 정책으로 꼽힌다. 시 주석 등판이래 2005년과 2010년은 중국 경제에 나름 중요한 의
시진핑이 마지막으로 민간기업에 관한 심포지엄을 개최한 것은 2018년 11월 1일이었다. 당시 중국의 대외정세는 트럼프 1임기 중 중미 무역전쟁이 가열된 시점이었다. 중국에서 '민간기업이 시장을 떠난다'는 내부 소문이 흉흉하게 나돌았다. 그러나 시진핑 주석이 직접 나섰다. 민간기업 심포지엄을 열고, 중국 당국의 입장을 명확히 전했다. 중국 기업 불안도 많은 부분이 해소됐었다. 다시 6년이 지났다. 중국은 또 다시 트럼프 2기 행정부를 맞이해야 한다. 1기 때보다 더 심한 무역 갈등이 예고되고 있다. 같은 위기가 되풀이 된다면 자연히 대응도 되풀이 돼야 하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민간기업 심포지엄은 어찌보면 중국 당국의 자연스러운 행동일 수 있는 것이다. 중국은 대외적으로는 7년 만에 또 한 차례의 트럼프 무역전쟁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대내적으로는 팬데믹 이후 약화된 경제와 강력한 규제에 직면하게 될 것으로 예견되고 있다. 두 차례의 민간기업 심포지엄 사이에 6년이 넘는 기간 과연 중국의 민간 기업들은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을까? 다른 어떤 것보다 시 주석 심포지엄의 성패에 관련되는 문제다. 일단 이 기간 중국 당국은 기업의 고삐 바짝 움켜잡았던 시기
“세월(歲月), 별을 낚고, 살을 깎는다.” 한 생이다, 살아서 죽은 것. 생은 우연과 필연의 지속적인 반복이다. 지속적 반복의 상징은 하늘이다. 하늘의 달, 별은 항상 그렇게 변하고 변해 제자리로 돌아온다. 우연은 그 변화 속의 스침들이다. 우리 한자에서 그 반복의 한 고리를 세(歲)라고 한다. 본래 깎는다는 뜻이다. 그리고 별의 이름이기도 했다. 세는 하늘의 별, 목성의 이름이다. 밤하늘 가장 밝은 별이다. 더 밝은 별, 금성, 샛별이 새벽을 밝힐 때까지 목성이 밤하늘을 지킨다. 월도 하늘의 별, 달의 이름이다. 달은 별이라 하기에 크고 밝다. 태양의 빛을 보듬어 밤 대지를 비춘다. 급은 다르지만, 둘은 우리 생의 한 변화의 고리, 하루와 한 달을 상징한다. 목성의 빛에 샛별에 가리기 시작하면 새벽이 되고, 해에 가르면 낮이 된다. 밤하늘 ‘하루’의 증거가 바로 세(歲)다. 월은 밤마다 나타나 몸으로 한 달의 변화를 보여준다. 만월은 한 달의 끝,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 본래 세(歲)는 시간의 의미는 아니었다. 갑골자에서 세(歲)는 과(戈)라는 무기로 살을 도려내는 이미지를 형상화한 글자였다. 다리에서 다리를 떼어낸 모습이다. 잔혹한 형(刑)이다. 상나
우리는 모두 졸(卒), 시작과 고통, 예정된 죽음이다. "죽음과 삶은 하나다." 한자 졸,卒의 가르침이다. 한자 (卒)은 묘하다. 삶과 죽음. 그 두 개의 뜻이 함께 있다. 먼저 삶의 의미다. 졸은 사회 한 계층의 사람들을 의미한다. 가장 평범한 사람들, 삶이 고달픈 이들이다. 선배 사(士)의 아래가 바로 졸(卒)이다. 군에서 사병을 의미했고, 옛날 농사를 지며 군역을 담당했던 계층을 의미했다. 오늘로 치면 평민이다. 우리 모두가 평민인 오늘날, 우리는 모두가 졸(卒)이다. 그 옛날 한자 졸은 그런 이들을 가리켰다. 하지만 그 보다 더 옛날 졸이 무엇을 의미했는지는 오늘날 누구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졸은 갑골자에 등장하는 오래된 한자다. 하지만 자형은 분명히 전해지는 데 그 의미를 짐작하기는 어렵다. 모양이 묘하다. 다음은 죽음이다. 졸은 죽다는 뜻도 가지고 있다. 한 글자가 삶과 죽음의 두 가지 의미를 가진 채 쓰인다. 역시 묘한 한자다. 한자의 자형에 그 비밀이 있다 싶다. 앞서 이야기 했듯 갑골 문자에 등장할 정도로 오래된 글자가 바로 졸이다. 졸의 모양은 보듯 그 뜻을 짐작하기 어렵다. 갑골자를 연구한 많은 이들이 졸의 의미를 해석하려 매달렸다. 두
지난 2월 17일 글로벌 사회 관심은 시진핑 주석 주최로 베이징에서 열린 민간기업 심포지엄에 쏠렸다. 카메라의 초점은 이날 참석한 여러 IT 기업 오너들 속에서도 정말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알리바바의 창업주 마윈이었다. 지난 5년 동안 마윈은 '감독의 폭격'으로 인해 소극적이었고, 한때 일본에 살았다가 중국으로 돌아온 후 거의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으며, 그의 행보는 점차 중국 민간 기업가들에게 '정치적 풍향계'로 간주되고 있다. 이번 심포지엄에는 마윈 이외 화웨이의 설립자인 렌정페이, 텐센트의 회장 겸 CEO인 포니 마, 샤오미 그룹의 설립자이자 회장 겸 CEO인 레이 준, CATL의 회장 겸 CEO인 정위췐, BYD의 회장 겸 사장인 왕촹푸, 메이퇀의 설립자 회장 겸 CEO인 왕싱 등이 참석했다. 아울러 지난 한 달 동안 로봇 및 AI 분야에서 인기를 얻은 두 회사인 유니트리 테크놀로지의 설립자 겸 CEO인 왕싱싱과 하이플라이어 퀀트의 설립자인 량원펑도 회의에 참석했다. 중국 국영 CCTV의 영상에는 런정페이, 왕촨푸, 왕싱싱, 레이쥔 등이 물론 류융하오와 위런룽이 포럼에서 연설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회의에서 시진핑 주석은 "공공경제를 확고하게 공고히 하
시진핑 중국 국가 주석이 6년 만에 처음으로 민간기업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번 심포지엄에는 중국 주요 IT기업 오너들은 물론, 그동안 두문불출했던 알리바바의 창업주 마윈도 참석했다. 최근 화제를 모은 딥시크의 창업주도 얼굴을 비췄다. 드문 행사에 보기 드문 인사들의 출현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됐고, 중국의 이번 심포지엄은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는지 관심을 모았다. 사실 중국은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과 함께 미중 무역전쟁의 2차전인 관세전을 직면한 상황이다. 중국은 이 같은 상황을 글로벌 경제상황과 국제 정치상황으로 양분해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먼저 글로벌 무역 상황 악화는 중국 경제에게 위기지만, 기술 기업들의 발전을 통한 ‘기술굴기’를 지속하면서 소비재 산업의 내수 확대를 통해 위기를 극복하면 오히려 전쟁이 끝나고 난 뒤 모든 상황이 중국에게 유리해질 것이라 전망하고 있다. 이어 국제 정치적 상황은 사실 중국에게 유리한 면이 크다. 그동안은 국제 정치무대에서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한 강력한 서구세력에 맞서 중국은 아프리카와 중동에 힘쓰며 미약해진 러시아, 북한을 중심으로 버티는 형국이었다. 하지만 미국발 관세전은 글로벌 국제지형, 특히 서구세력을
1967년 4월 1일 류샤오치에게는 ‘사면홍기’의 날이었다. 중국 전국 신문에 치번위가 쓴 ‘애국주의냐, 매국주의냐’라는 제목의 긴 장문의 평론이 게재된다. 내용은 청궁비사라는 영화 평론을 빗댄 류샤오치 비판 문장이었다. 문장은 류샤오치가 청궁비사를 애국주의 영화라 평했다면서 류샤오치의 8대 죄악들을 열거했다. 류샤오치는 내용을 읽고 신문을 구겨서 바닥에 던진다. “아니 이 전부가 거짓말이다. 내가 언제 ‘청궁비사’ 영화를 애국주의 영화라 평한 적이 있었던가? 내가 하지도 않은 말들을 했다고 하다니, 이는 정말 무고다. 당내 투쟁이 언제부터 이렇게 하류에 머물렀던가? ‘마오쩌둥 사상’이라는 용어는 내가 7차 전인대에서 처음 언급한 것이다. 그 뒤 누구보다 마오쩌둥 사상의 확산에 기여해왔다. 이제와서 내가...” 류샤오치는 억울했다. “내 발언을 기억하는 이들이 있다면, 누군가는 나를 변호해야 한다. 당 중앙 간부가 변호를 해야 하고, 인민들이 변호를 해줘야 한다. 지금이야 말로 내게 이 나라, 이 인민, 이 당의 공정한 몇마디가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현실은 류샤오치의 소망과 달랐다. 1967년 4월 6일 저녁 홍위병 조반파가 류샤오치 사무실에 들이닥쳤다
절반만 죽자. 목숨 값이 얼마인지 누가 싶게 결정할 수 있을까? 그래서 예로부터 목숨을 거는 최선의 일로나라를 위한 일을 꼽았다. 여기서 나라하니까, 추상적이지 간단히 보면 많은 남을 위한 것이라는 의미다. 본래 나라라는 게 그 속의 수백만, 수천만의 사람들을 의미한 것이기 때문이다. 땅이 아무리 넓어도 그 땅위에 사는 이들의 수가 적으면 작은 나라요, 그 땅에 사는 사람들의 수가 많으면 큰 나라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한국은 인구 5000만 명의 적지 않은 나라다. 북한을 합치면 잘 하면 인구 1억 명에 달하는 나름 대국이 될 조건도 갖추고 있다. 다시 목숨 값이 이야기다. 옛날 돈만 아는 자린고비가 있었다. 돈이라면 무엇이든 하는 인물로 소문이 났다. 하루는 그 소문을 이웃에 사는 부옹(富翁)이 듣게 됐다. 부옹은 한자 그대로 돈 많은 노인이란 뜻이다. 오늘날 재벌 오너가라 생각하면 된다. 이 부옹이 소문을 듣고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웃 자린고비를 찾아 제안을 했다.; “자네 내가 황금 1000냥을 그냥 주지. 하지만 반년뒤에는 내가 자네를 두둘켜 패 죽인다면 그 황금 1000냥을 받겠는가?” 부옹의 말을 들은 자린고비가 짐짓 심각한 듯 반나
제발 아내만은 건들지 마오 류샤오치의 비판이 거세지던 1966년 12월 18일 결국 왕광메이를 조사하는 특별 조사부가 신설된다. 한국으로 치면 ‘왕광메이 특검’이 시작된 것이다. 왕광메이는 류샤오치의 6번째 부인이다. 중국이 나은 학자요, 정치가였다. 1948년 류사오치와 결혼해 1969년 사별하기 전까지 류사오치와 1남3녀를 두고 살았다. 공산 중국 건국 초기에는 마오쩌둥도 아끼던 여성 인재로 꼽힌다. 무엇보다 일찍이 미국 유학을 영어를 잘했다. 공산당 활동도 미국과 군사 협상에서 공산당측 통역을 맡으면서 이뤄졌다. 그의 영어 실력을 마오쩌둥도 감탄했을 정도다. 오죽했으면 왕광메이를 아끼는 마오쩌둥에 마오의 부인이 장칭이 질투했다는 이야기가 남아 있을까. 문제는 바로 이 점이다. 장칭은 문화대혁명을 주도한 4인방 중 한 명이다. 당대 중국 최고 권력인 마오쩌둥의 아내였다. 왕광메이는 통역 과정에서 미국에 간첩노릇을 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바로 이 혐의에 대한 조사가 시작된 것이다. 물론 이 조사의 끝에는 류샤오치가 있었다. 왕광메이는 1967년 1월 6일 돌연 중학교를 다니던 딸이 교통사고로 다리를 절단하는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전화를 받는다. 놀란 왕광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