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례와 허식 그리고 실속은 그릇과 음식의 관계와 같다. 그릇이 예쁘고 아름답다고 음식이 나쁘면, 나쁜 것이듯 겉치레가 아무리 화려해도 실속이 없으면 나쁜 것이 된다. 옛날 중국에 한 자린고비 양반이 있었다. 이 양반은 지역에서 가장 예쁘고 훌륭한 잔치그릇을 가지고 있었다. 그릇에는 매 그릇마다 담을 음식들이 채색된 그림으로 생생하게 그려져 있었다. 그림들이 얼마나 생생한지 마치 실제 음식처럼 화려하기 그지 없었다. 이 자린고비 양반은 매번 이 잔치 때마다 이 그릇을 이용해 득을 봤다. 사실 그 득이란 게 별개 아니다. 잔치를 하면서 그릇만 내놓고 실제 음식을 내놓지 않은 것이다. 하루는 한 손님에 물었다. “아니 어찌 음식이 없습니까? 뭘 먹어야 하나요?” 그러자 자린고비 양반이 답했다. “아니 보기 좋은 떡이 맛도 좋다지 않소. 보기 좋은 음식이 그득한 데 보기만 해도 배부른 게 아니요. ㅎㅎ” 어이 없어 하는 손님을 뒤로하고 자린고비 영감이 웃으며 돌아섰다.
“春风不相识, 何事入罗帏?” (춘풍부상식, 하사입라위) 어디선가 불어온 봄바람 애꿎은 치마 끝만 들추네. 시성 이백(701~762)의 춘사다. 이백은 누구라 말할 것 없는 천재 시인이다. 1300여년 전 당나라 시인이지만, 지금 읽어도 시의와 시정은 읽는 이의 마음을 적시고, 요동치게 한다. 그의 시어(詩語)는 어쩔 수 없는 시대의 한계 속에 있지만, 그의 시율은 시대를 넘어 천고를 관통해 면면히 이어진다. 동서양, 그의 시처럼 때론 호방하고 때론 애처롭고 때론 정욕에 싸인 듯 때론 백합처럼 간결하고, 깨끗한 이 모든 것을 다 갖춘 시를 본 적이 없다. 춘사(春思)는 말 그대로 ‘봄의 생각’이다. 봄에 드는 그리움이다. 하지만 겨우내 가슴 속 깊숙이 농 익어온 마음의 정, 심정(心情)이다. 본래 그리움이 짙어지면 애달프다. 애달프다는 건 마음만 아픈 게 아니다. 몸도 아픈 것이다. 몸과 마음으로 그리고 그려, 그리다 못해 그대 오는 날 그만 버티지 못하고 끊어지는 단장(斷腸)의 고통, 애달픔이다. 춘사는 이 애달픔을 너무 간결하게 너무도 새침하게 너무도 요염하게 그렸다. 그래서 일견 소녀의 방심(芳心)같고 탕부의 음심(淫心)같으며, 때론 열부(烈婦)의 결의(
우리는 많은 경우 계산을 했는데, 어리석은 답을 얻곤 한다. 삶의 계산은 일차원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다양한 방면의 고른 고려가 더해져야 하는데, 보통의 경우 우린 하나만 알고 계산을 한다. 자연히 항상 어리석은 결론이 나온다. 옛날 중국에 돈만 많은 어리석은 노인이 있었다. 돈을 쌓아두고, 그 많은 농사와 밭을 혼자서 했다. 친구들이 조언하길; “여보게 노비를 고용하시게 그러면 더 많은 농사를 짓고, 밭을 할 것 아닌가? 자네는 쉴수도 있고.” 했다. 하지만 이 노인이 답하길; “아니 고용을 하면 일하는지 하지 않는지 감독을 해야지. 그러면서 밥도 주고, 옷도 주고, 숙소도 마련해줘야 할 것 아닌가. 수지가 맞지를 않아. 수지가...” 그 말을 들은 한 젊은이가 노인을 골려 주려 제안을 했다. “그럼 노인장, 우리 집에 어려서 도사의 술법을 얻어 밥을 먹지 않고 일만 잘하는 농노가 있는데, 데려다 쓰면 어떠시오? 내 노인장이 원하면 빌려 주리다.” 자리고비 노인이 놀라며 되물었다. “아니 그럼 밥을 안 먹고 어찌 산다는 말이요.” 젊은이가 답하길; “어려서 도인에게 도술을 배워 바람을 먹고 방귀만 뀐다오.” 그러자 노인이 한 참 생각을 한 뒤 답했다. “아
‘취해 잊은 시간 너도 나도 웃고‘ “我醉君复乐,陶然共忘机。”(아취군복락, 도연공망기) “취한 그대에 건넨 한 잔 그댄 환희 웃고 우린 어느새 시간마저 잊었다네.” 시성 이백(李白:701~762)의 시다. 가장 흥했던 당이 망조가 들기 시작한 시기의 인물이다. 한문학의 영향을 받은 동양에서 모르는 이가 없는 시인이다. 일찍이 중국 천하를 유람하며 곳곳에 명시를 남긴 것으로 유명하다. 쉽고 간결하며 호방하면서도 때론 간절하다 못해 애절한 시구를 남겼다. 한 수 한 수가 사람의 심결을 따라 스며든다. 소개한 시는 ‘下终南山过斛斯山人宿置酒’(하종남산과곡사산인숙치주)다. 제목 그대로 ‘종남산 아래를 지나다 은거해 사는 친구 집에 들려 술을 마신다’는 내용이다. 석양 산길을 지나 친구를 만나는 묘한 기대가 풍경 묘사에 담겼다. 그리고 만난 친구와 나눈 주담(酒談) 낙엽 소리에도 웃는 소녀만 같다. 이제 시의(詩意) 속으로 들어가 보자. 긴 여름밤이다. 산기슭 친구를 찾아가 술 한 잔을 나눌까, 길을 나선다. 능선에 오르니 해가 진다. 길어지던 나뭇가지 그림자 어느새 달 빛 그림자로 바뀌어 간다. 발걸음 총총 재촉하니, 달빛도 졸졸 따라온다. 어느만큼 왔나, 돌아보니,
뱃속의 똥을 보라. 살았느냐? 똥을 쌌다는 의미다. 먹으면 반드시 싸게 돼 있다. 우리는 그 것을 살았다, 살아 있다 한다. 살아 있다는 것 바로 ‘생’(生)이요, 생은 먹고 쌌다는 변화의 연속이다. 먹는다는 게 무엇인가? 빈 배를 채운다는 게다. 빈 배가 무엇이던가? 우리 속의 빈 곳이다. 우리 겉보다 길고 어두운 빈 곳이다. 그 빈 곳은 살아 있는 한 끝없이 채워져야 한다. 또 비워져야 한다. 채워지고 비워지는 곳 바로 우리 뱃속이다. 우리 뱃속은 너와 네가 살아 있는 한 음식이 들어오고, 찌꺼기, 똥이 돼 나오는 곳이다. 입이 입구요, 항문이 출구다. 생명의 출구도 있다. 정자가 들어가 새 생명이 돼 나오는 곳, 바로 ‘현빈의 문’(玄牝之門)이다. 항문에서 나오는 건 배설, 똥이요, 현빈의 문에서 나오는 건 탄생이다. 우리를 둘러싼 우주도 마찬가지다. 무엇인가의 빈 곳. 끝없이 무엇인가 들어와 무엇인가로 변해 나가는 곳, 우리의 빈 곳, 뱃속이며 우주다. 그 속 현빈의 문에서 나오는 게 ‘상생’(相生)이요, ‘탄생’(誕生)이다. 면면히 끝없이 저절로 이뤄지는 것. “면면약존 용지불근”(绵绵若存,用之不勤) “끝없이 존재하며, 힘을 쓸요가 없다.” 다 개똥
중국이 지난 9월 25일 모의 탄두를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태평양으로 발사했다. 중국의 공개적 미사일 시험은 40여년만의 일이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이 2년을 끌고 있고, 미국의 대선이 코앞인 상황이다. 이스라엘과 이란의 긴장으로 중동 일대에 전운이 깃들고 있다. 과연 중국은 왜 이 시점에서 갑자기 미사일 시험을 한 것일까? 세계가 우려 속에 중국의 속내를 파악하기에 여념이 없다. 중국이 글로벌 사회에 보는 신호는 무엇인가? 중국 국방부 발표에 따르면, 중국 로켓군은 9월 25일 8시 44분 훈련용 모의 탄두를 탑재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태평양 해당 공해상으로 발사하는 데 성공했다. 국방부는 “실험 탄도가 예정된 지점에 정확하게 착륙했다”고 밝혔다. 중국 국방부 대변인은 중국 신화통신에 “이번 미사일 발사는 연례 군사 훈련을 위한 일상적인 계획”이라며 “국제법과 국제 관행을 준수하며 특정 국가나 목표를 겨냥한 것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중국은 미사일 발사에 대해 “무기와 장비의 성능, 병력 훈련 수준을 효과적으로 시험하기 위해 관련국에 사전 통보했다”고 밝혔다. 미국 국방부 역시 즉시 반응하고 나섰다. 미국 국방부는 지난 25일 오후 “오늘 오전에 발
미국이 중국 집권당인 공산당의 집권을 억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중국 입장에서는 사실상의 적대행위여서 향후 미중 갈등은 더욱 심화할 것으로 보인다. 이번 법안에서는 중국 상무위원들의 재산 동결도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 가족들에 대한 미국 비자 취소 등의 조치도 가능하다. 중화권 매체들에 따르면 미 하원은 25일 '중국 공산당 폭정 및 탄압에 대한 제재법'(중공 중지법이라고도 함)을 통과시켰다. 중국은 헌법을 통해 공산당 일당독재로 운영된다. 글로벌 2위의 경제체로, 인구 대국인 중국의 집권당을 미국이 자신들의 법으로 억제하겠다는 것이다. 법안에 따르면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이 홍콩의 자치권을 침해하거나, 대만 국민에 대한 공격성을 강화하거나, 위구르 무슬림 탄압에 기여할 경우 미국은 이들의 자산 매매를 금지한다는 내용이 나와 있다. 미 언론매체에 따르면 홍콩 국가보안법은 한 국가, 두 체제에 심각하고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입혔으며 중국의 국제법 이행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를 더욱 약화시켰다. 미국은 중국 당국이 신장 위구르 자치구의 무슬림 소수민족을 탄압하고 체계적인 인구 통제를 실시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번 법안 제정을 통해 중국 당국의 이 같은
어느 부채가 바람을 아끼던가? 부채가 움직이면, 바람이 이는 것을 어찌 부채가 바람을 아낄까? 부채만 있으면, 바람은 끝이 없거늘. 하지만 우린 모두가 안다. 부채가 귀한 건 바람 때문인 것을. 끝없이 일어난 바람인 것을. 사람은 바람만 귀히 여기지만, 결국 귀한 건 바람이 아니라 부채다. 끝없이 바람을 우리에게 불어 주는 그런 부채 노자의 도는 부채다. 끝없이 생명을 불어 일으키는 그런 부채다. 허이부굴, 동이유출(虚而不屈,动而愈出: 비었으나 끝이 없고, 움직일수록 더 많은 게 나온다.) 바람보다 귀한 게 바로 부채이듯 생명보다 귀한 게 바로 도다. 그 것이 귀한 것이다. 말 하면 뭘 하나, 귀한 걸 귀하다 알면 그 뿐인 것이다.
옛날 중국에 두 자리고비 양반이 이웃하며 사이 좋게 살았다. 어느 여름날 한 자리고비가 옆 마을 자리고비 양반 집에 놀러갔다. 하인이 차를 들고 들어왔는데, 옷이 없어 기와장 두 장을 묶어서 허리에 걸쳐 앞뒤 민망한 곳만 가린 채였다. 집 주인이 헛기침을 하며 말했다. “아니, 내가 손님이 있으면 제대로 의관을 갖추라 했거늘, 이게 체면 안 서게 무슨 짓이냐!” 놀란 하인이 급히 나갔다. 잠시 뒤 들어온 하인은 여전히 옷을 벗은 알몸이었다. 다만 기왓장 두 장 대신 이번에 큰 뽕 잎 두장을 끈으로 엮어 역시 앞 뒤 민망한 곳만을 가린 채였다. 주인이 어쩔 수 없다는 듯 차를 권하자, 놀러온 자린고비가 말했다. “아니. 주인장 보니까 낭비가 심하시오” 주인이 되물었다. “무슨 말이시오? 내가 어찌 낭비가 심하단 말이오?” 객이 답했다. “어찌 하인이 겨울옷 여름옷을 구분해 입는다는 말이요. 내 그 것만 봐도 주인장이 얼마나 낭비가 심한 줄 알겠오.” 그러자 집 주인이 웃으며 말했다. “아이고 이 양반아, 내 어찌 그런 도리를 모르겠어. 내 저 놈을 지난 여름에 거둬들였는데, 당시 조건이 먹는 건 자기가 어찌 알아서 해결할테니, 옷만 해결해 달라는 것이었오. 그
인동(忍冬)의 마음, 세한심(歲寒心)이다. 푸르려는 마음, 겨울을 세는 마음이다. 겨울나기가 힘든 건 지루하기 때문이다. 밖에는 온 통 추위 뿐, 꽃도 나무도 변화가 없다. 방에서 이 지루한 겨울을 나야한다. 묘한 게 지루함과 싸움이다. 지루함은 이기려 하면 할수록 지치고 지루함에 지고 만다. 이 지루함을 지나야 봄을 맞을 수 있는데 …. 봄의 꽃을, 풀잎의 푸름을 즐길 수 있는데 …. 지루함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잊는 것이다. 뭔가를 잊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은 수를 세를 것이다. 그래서 동양에선 예로부터 겨울이면, 붓으로 굵은 나무 가지를 그려, 그 위에 하루에 하나씩 1000개 나뭇잎을 그려 넣으며 1000일, 3개월여의 겨울을 셌다. 겨울을 세는 마음이 바로 세한심(歲寒心)이다. 봄의 푸름을 기다리는 마음, 누구나 고대하고 기다리는 변치 않는 마음이다. 시인에게 시를 쓰게 하는 그런 마음이다. “江南有丹橘 经冬犹绿林(강남유단귤, 경동유록림) 岂伊地气暖 自有岁寒心(기이지기난, 자유세한심)” 강남 단귤 나무 봄 맞아 푸른데. 그 어찌 봄기운만의 덕이랴, 겨울 센 변치 않는 의지 때문이지. 역시 장구령(張九齡, 673~740)이다. 감우십이수(感遇十二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