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과 베트남의 대중정책이 극과 극을 보여주고 있어 주목된다. 남중국해를 놓고 필리핀과 중국이 연일 물리적 충돌을 하면서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는 가운데 반해, 베트남의 신임 총서기 겸 국가 주석은 취임과 동시 중국을 찾아 교류수준을 한 층 더 높이고 나섰다. 외신들은 중국을 놓고 서로 다른 태도를 보이는 양국의 선택이 향후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관심을 높이고 있다. 일단 서구 입장에서는 중국과 갈등을 빚으며 미국과 서구와 공동보조를 맞추는 필리핀의 선택에 더 점수를 주는 상황이다. 중국 매체들에 따르면 토람 베트남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 겸 베트남 국가주석이 이번 주 중국을 국빈 방문해 지난 8월 19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을 가졌다. 베트남 정부는 성명을 통해 토람 총리가 방문 중 교통 발전을 위해 중국으로부터 연성 차관과 기술 지원을 모색하는 것을 언급했으며 중국과 국방 및 안보 관계를 강화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중국과 베트남은 회담 이후 14건의 협정을 체결했는데, 그 중 양국 간 국경을 넘는 철도 건설을 촉진하는 내용이 주요 초점이 됐다. 시 주석은 토람 주석과 회담에서 "중국은 항상 베트남을 주변 외교의 우선순위"로 여겨왔다고 말했다.
1964년 6월 6일은 현 중국과 프랑스의 수교일이다. 이 수교일은 중국 내 한 인물에게는 대단히 특별한 의미가 있는 날이었다. 그는 수교일에 맞춰 처음으로 주 프랑스 대사관에 근무하는 이들에게 부탁해 ‘올리버’라는 이름의 커피숍을 찾아 커피 100여 잔 값과 300갑의 중국 담배를 가져다 주도록 했다. 수교를 기념하는 예물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적은 규모였다. 도대체 어떤 인물이, 왜 이런 예물을 준비해 전달을 한 것일까? 주인공은 다름 아닌 저우언라이였다. 중국 당시의 총리,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직위에 있는 인물이었다. 그럼 그는 왜 프랑스 수교를 기념에 커피 100잔 값과 담배 300갑을 선물했던 것일까? 역시 선물이 아니었다. 그럼? 사실 저우언라이가 어린 학생으로 유학시절 얻어 마시고, 얻어 피웠던 담배를 갚았던 것이다. 여기에는 중국과 프랑스의 오랜 역사가 숨어 있다. 중국과 영국, 프랑스 등은 청나라 말기부터 은원관계가 상당히 복잡하다. 영국은 중국에 아편을 밀수해 팔아먹다 아편을 불에 태운 사건을 빌미로, 중국을 침략해 전쟁을 일으켰다. 소위 ‘아편전쟁’이라 불리는 사건이다. 아편전쟁은 1839~1842년에 1차, 1856~1860년 2차 이렇게
“들에 핀 이름 없는 꽃이라고 어찌 자존심마저 없으랴.” 홀로 들녘에 핀 꽃에게 이 보다 더 강한 말이 어디 있을까? 세상에 어떤 힘도 강한 바람도 잡초를 누이기는 해도 잡초를 꺾을수는 없다. 바로 잡초의 의지, 들녘에 핀 이름 모를 잡초의 마음 한 구석 녹지 않는 얼음 한 조각이 있기 때문이다. “혼자면 혼자지 어찌 미인의 손길을 기다릴 것인가.” “草木有本心,何求美人折!”(초목유본심, 하구미인절!) 당의 시인 장구령의 감우 4수 중 제 2수다. 자연 속에 만물을 아름답게 풍성하게 만드는 참 진리를 따르는 선비가 무엇이 아쉬워 세간의 인정을 황제의 선택을 기다릴 것인가. 바로 당의 선비, 장구령의 일갈이다. 사실 시가 그린 풍경이 너무도 예쁘고 아름다워 일갈이라 하기 힘들다. 시는 봄과 가을을 대표하는 이름 난 풀 나무에서 시작한다. 봄 바람 하늘거리는 난초잎새 풍성하고, “兰叶春葳蕤”(난엽춘위유) 가을 날 달 밝은 밤엔 계수나무 무성하니, “桂华秋皎洁”(규화추교결) 이 충일의 생명들 온 세상 가득히 계절 계절 아름답고 아름답구나 “欣欣此生意,自尔为佳节”(흔흔차생의, 자이위가절) “이 숲엔 누가 살까?” 봄 숲에 가을 풀에 묻는다. “谁知林栖者”(수지임서자
1. 중국 현대사에 가장 이상한 당중앙 전체회의...운명의 제8기 12중전회 1968년 10월 13일 중국 베이징에서는 열린 중국 공산당 제 8기 중앙위원회 12차 전체회의는 중국 건국 이래 가장 독특한 회의로 꼽힌다. 전체 인원의 반수도 참석하지 못한 역대 가장 적은 수의 중앙위원, 후보위원들의 회의였기 때문이다. 당대 12중전회에 참석 대상인 중국 공산당 제 8기 중앙위원회 중앙위원 수는 총 87명이었다. 본래 97명이었으나 10명이 사망했다. 후보위원 수는 98명이었다. 그런데 8기 12중전회 참석 중앙위원수는 40명, 후보위원은 더 적은 19명에 불과했다. 어찌 보면 초라할 정도의 회의였다. 하지만 이 회의는 중국 현대사에 가장 중요한, 어쩌면 가장 불행한 정치적 결정을 하는 회의였다. 중국 중앙위원회 위원과 후보위원들은 이 회의에서 자신들 손으로 뽑았던 국가주석인 류샤오치(1898. 11. 24~1969. 11. 12)에 대한 탄핵을 의결한다. 정족수도 못채운 이 회의에서 중국 현대사의 가장 불행한 사건이 결정 되는 것이다. 류샤오치가 국가 주석이 된 사연을 알면, 무슨 말인지 안다. 먼저 중국 1대 주석인 마오쩌둥이 국가주석직을 내려놓는 원인을 알
노자의 그런 도를 따르면 있음에는 반드시 없음이 따름을 알고, 그 없음이 있어, 비로소 있음의 존재 값이 정해짐을 안다. 그래서 이 도리를 알고 따르는 이는 있음을 통해 없음을 알고 없음의 유용함을 안다. 있음의 가치를 안다. 그렇게 있고, 없음이 어울려 성장하는 게 만물이 성장하는 이치다. 없음에 힘써 있음이 쓰이도록 하는 걸 우리는 “공(功)을 이뤘다” 한다. 없음에 힘쓰니 뭘 한다 말할 게 없고, 그래 공을 이뤘다고 뭘 했다 말 할 게 없다. 말하지 않았다고 위하지 않은 게 아니다. 말 보다 행동으로 위하고 때로는 행동하기 보다 참고 지켜봄으로써 위하는 게 진정한 위함임을 안다. 진정한 사랑이 놓아줄 수 있는 사랑이듯, 진정한 위함은 유로써 또 무로써 다함이라는 것을 안다. 그저 있음(有) 앞(前)에 없음(無)을 있어 순서가 생기고 원형의 세계에서 앞뒤가 계속 나가 언젠가 내 앞에 있는 뒤를 만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래서 노자는 시작을 시작이라 하지 않고 그 끝을 끝이라고도 않는다. 시작이 없으니 끝도 없다. 오직 머물지 않아야, 떠남도 없는 것이다. “是以圣人居无为之事,行不言之教,万物作而弗始也,为而弗志也,成功而弗居也。夫唯弗居,是以弗去。”(시이
유와 무가 생을 만들고, 길고 짧음이 모양을 만드는 게 세상의 이치다. 세상만물이 서로 하나면서 만물로 다른 이치기도 하다. 도리를 따르면 어려운 것을 어렵다고만 않고 쉬운 것을 쉽다다고만 않는다. 어려우니, 이제 쉬울 수 있고 쉬우니, 어려울 수 있는 때문이다. 하지만 이 도리를 따르기 어려우니, 그것은 쉬움은 어려움에 가려져 있고 어려움은 쉬움에 가려져 있는 탓이다. 짧은 것은 긴 것에 가려져 있고 긴 것은 짧은 것에 가려져 있다. 높고 낮음도 앞과 뒤도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가리고 있다. 아쉽게도 우리는 그렇게 당장 드러나는 하나만 본다. 보이지 않아도 있는 것을 알면, 보이지 않아도 있는 것은 있다 할 것인데, 아쉽게도 우리는 보이지 않으면 없다고 한다. 없는 게, 무(無)란 없는 게 아닌데, 우린 보이지 않는다고 없다한다. 1과 0처럼 1다음의 0이 10이 되듯 유와 무는 유무로서로 새로운 단위의 존재가 된다. 0을 ‘없음’이란 값이 아니라 그저 ‘없다’고만 하면 그런 인식의 세상 속에는 ‘1’은 언제나 ‘1’일뿐이지, 10이나, 100이나, 1000은 있을 수가 없다. 만물이 유와 무로 이뤄지는 존재임을 자각하는 게 바로 노자의 도다.
멍! 참 덥지유. 더위도 더윈데, 국회 거시기들 땜시 더 덥지유? 열 받지유. 아이고 뭐 국회만 문제감유? 용산은 어쩌유? 그냥 있으면 될 것을 뭘 결정만 하면, 뭐 쫌 정말 거시기 허유. 이게 말이유, 국민 골탕 먹일려고, 둘다 작정한 듯 혀유. 뭔 이야기냐? 뭔 이야기겠슈, 바로 광복절 행사 이야기쥬. 윤통일 “아니 그게 국민 먹고 사는 일이랑 무슨 상관이 있냐고?” 아니 개도 웃것슈. “언제부터 대한민국 국민이 먹고 사는 걸 걱정했데유?” 아니 그래 그건감유? 그래서 ‘먹고 사는 일 걱정을 시켜줄려 하는감유?’ 참 거시허유. 그쥬? 하나 묻겄슈. “보리굴비 싫어하는 사람이 보리굴비 집을 하면 망하겠슈? 흥하겠슈?” 물어보나 마나 아님감유. 보리굴비를 못 먹는 사람은 보리굴비집을 혀도, 보리굴비를 싫어하는 사람이 허면 한되쥬! 또 하나 더 묻겄슈. “지금까지 보리굴비 싫어한다고 해오던 이가, 사장이 되면 앞으로 좋아하겄다 허면, 믿남유? 못 믿남유?” 못 믿지유, 그게 인지상정이지유. 누구 이야기유? 다들 아시쥬? 그래서 지난 15일 광화문 사거리에서 서울역까지는 온통 시위대가 난리였슈? 참 저 독고, 개도 시끄러워 못살겼슈. 차는 어찌나 막혔는지. 아니
도리를 따르면 어려운 것을 어렵다고만 않고 쉬운 것을 쉽다다고만 않는다. 어려우니, 이제 쉬울 수 있고 쉬우니, 어려울 수 있는 때문이다. 하지만 이 도리를 따르기 어려운니, 그 것은 쉬움은 어려움에 가려져 있고 어려움은 쉬움에 가려져 있는 탓이다. 짧은 것은 긴 것에 가려져 있고 긴 것은 짧은 것에 가려져 있다. 높고 낮음도 앞과 뒤도 그렇게 서로가 서로를 가리고 있다. 아쉽게도 우리는 그렇게 당장 드러나는 하나만 본다. 보이지 않아도 있는 것을 알면, 보이지 않아도 있는 것은 있다 할 것인데, 아쉽게도 우리는 보이지 않으면 없다고 한다. 없는 게, 무(無)란 없는 게 아닌데, 우린 보이지 않는다고 없다한다. 1과 0처럼 1다음의 0이 10이 되듯 유와 무는 유무로서로 새로운 단위의 존재가 된다. 0을 ‘없음’이란 값이 아니라 그저 ‘없다’고만 하면 그런 인식의 세상 속에는 ‘1’은 언제나 ‘1’일뿐이지, 10이나, 100이나, 1000은 있을 수가 없다. 만물이 유와 무로 이뤄지는 존재임을 자각하는 게 바로 노자의 도다. 그런 도를 따르면 있음에는 반드시 없음이 따름을 알고, 그 없음이 있어, 비로소 있음의 존재 값이 정해짐을 안다. 그래서 이 도리를 알
중국 자린고비 이야기다. 자린고비는 구두쇠를 뜻하는 순 우리말이다. 옛날 중국의 한 마을에 소문난 구두쇠가 있었다. 어느날 이 구두쇠가 옆 마을에 있는 구두쇠 선생의 이야기를 듣고 감탄한다. '내가 아낀다고 하는게 정말 하찮은 것이구나. 그 선생의 찾아 뵙고, 사부로 모셔 아끼는 방법을 배워야겠다.' 이리 결심한 구두쇠가 옆마을 구두쇠 선생을 사부로 모시기로 하고 찾아간다. 각종 예물을 준비했는데, 종이로 각종 과일을 그리고, 빈 술병에 물을 채워 사부에게 드리는 선물이라 준비했다. 하지만 찾아간 당일 아쉽게도 소문난 구두쇠 선생이 출타를 하고 없었다. 대신 사모가 있어, 구두쇠는 사모에게 온갖 예를 갖춰 인사를 하고 예물을 바쳤다. 그러자 사모 역시 종이로 그린 접시에 종이로 그린 과일과 과자를 얹어 내놓으며 말했다. "과일과 과자 좀 드시고 가시죠" 그 것을 본 구두쇠가 '역시 사모는 남다르군' 하고 감탄하고 돌아갔다. 얼마 뒤 그 유명한 구두쇠 선생이 집에 돌아왔다. 사모는 낮에 찾아온 구두쇠 이야기를 하나도 빼놓지 않고 이야기 했다. 내심 '대접은 잘했지요'라고 생각하며 구두쇠 사부의 칭찬을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웬걸. 칭찬 대신 떨어진 것은 '호
금은보화, 명예, 직위 이 모든 걸 한 번에 갖게 하는 게 있다. ‘성공’(成功)이다. 성공하면 원하는 걸 이룬다. 금은보화, 명예, 직위 원하는 걸 이룬 것, 그 것을 우린 성공이라 한다. 하지만 그 게 성공은 아니다. 정확히는 성공이 아니고 성공의 결과다. 사람들이 성공을 좋아하는 건 좋은 결과 때문이다. 금은보화, 명예, 직위 이런 게 좋은 게다. 하지만 성공은 그게 아니다. 금은보화, 명예, 직위 그게 성공이 아니라는 말이다. 진정한 성공(成功)은 말 그대로다. 공(功)을 이루는 것(成)이다. 그럼 공(功)이란 무엇인가? 공을 이루는 게 성공인데, 어떻게해야 공을 이루는 것일까? 역시 한자 공(功)에 숨은 뜻이 있다. 공이라는 한자는 비교적 일찌감치 쓰였다. 갑골문자에 나온 공(工)과 력(力)이 만든 회의자 겸 형성자다. 기록상 등장은 소전체에서 나온다. 소전은 진의 글씨다. 자형은 단순하지만, 그 의미가 깊다. 공(工)은 기술을 의미하고 력(力)은 쟁기로 발현되는 힘을 뜻한다. 둘 모두가 인간이 자연에 인간의 힘을 더해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이 자연에 새롭게 가치를 더하는 것 그 것이 바로 공(功)인 것이다. 세상 만물 가운데 자